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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May 03. 2019

휴가 탈탈 털기

2017.11.17~2017.11.26 ⑤, ⑥

오늘은 사우다지 1주년이자 하코네 1박2일 여행을 가는 날이다. 온천을 하고 싶다고 하니 여행을 계획해 버리는 무서운 아이 치쨩... 나혼자 가서 느긋하게 하고 싶다는 말이었는데...


먼저 어제 사우다지에서 했던 점심 약속이 있었다. 카나쨩은 취해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잊어버렸다고 했고, 나도 느지막히 일어나 버렸는데 유우키가 연락을 해서 둘이라도 가자고 했다. 집이 가까우니 타나 앞에서 만나 오모테산도로 향했다.



무슨 사슴고기인가 그런 거였는데 먹을 만했다. 유우키의 친구가 점원으로 있는 곳이었는데 뭔가 서비스를 줬었던가... 하여튼 데이트라고 생각하지를 않았는데 유우키가 사우다지에 가더니 데이트를 했다고 말했던 기억이다.


밥먹고 나와서 치쨩이랑 합류, 사우다지 1주년 선물로 쌀을 사서 갔다. 나도 한글로 '귀점의 익일 번창을 기원합니다' 쓰고, 두어잔 마시고 하코네로 떠날 준비를 했다. 하코네 처음 멤버는 꽤 있었는데, 결국 나 치쨩 감독 쿳상 네 명이 가게 됐다. 그전에 아오라는 이자카야에서 식사를 했다.



아마 사진 가장 없던 날 카드게임 '대부호'를 배웠던 것 같다. 의외로 룰 외우기가 쉬워서 계속 이겼다. 그걸 보던 치쨩이 트럼프에 우노용 카드까지 준비해왔다. 그게 지옥의 시작이 될 줄이야...

나는 너무너무 피곤해서 가는 길에 자고 싶었는데 치쨩이 재워주질 않았다. 결국 핸드폰 오셀로를 하기 시작했다. 치쨩은 꽤 동네 실력자로 정평이 나 있는데 내가 한 판 딱 이겨서 기분이 좋아서 사진을 찍었다.



하코네 도착! 이미 한밤중이라 택시 잡기도 여의치 않았다. 겨우 택시에 오르니 기사님이 한번 숙소 들어가면 물자 구하기가 보통 일이 아니라고 주의를 주셔서 편의점에 들러서 담배랑 도시락이랑 술 같은 걸 사서 숙소에 도착했다.



노천온천은 11월에도 춥지 않았다. 20살 넘어 친구랑 알몸으로 교류한 적이 없건만 일본에 와서 그걸 했다. 온천물이 다소 많이 뜨거웠고 풍경이 밤의 산이어서 무서웠지만 운치있었다. 온천욕을 끝내고 유카타로 갈아 입고 올라가려는데, 브래지어는 갖고 내려왔거늘 팬티를 두고 왔다... 올라가서 입기로 하고 노팬티로 올라갔는데 그걸 감독한테 들켜서 레슬링 기술을 걸리는 수모를 맛봐야 했다.


그리고 지옥의 대부호 릴레이가 시작됐다... 나도 씻고 딱 자면 좋겠구만 다섯시 넘어서까지 대부호랑 우노를 반복했다. 결국 감독이 마지막 판을 제안하며 여기서 지는 사람은 자기랑 한 이불 덮는 걸로 하자고 했다. 필사적으로 이기기 위해 노력한 결과 감독은 쿳상과 한 이불을 덮게 됐다.



그렇게 겨우 잠든 지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치쨩이 아까우니까 아침 온천 한 번 더 하자고 깨워서 갔다왔다. 조식은 물 건너간 일이었다. 목욕을 끝내고 돌아와서도 남자들은 자고 있었다.


숙소에서 동네 친구들 줄 선물을 산 후, 하코네에서 유명하다는 소바집에 갔다. 아무 날도 아닌데 줄을 30분 넘게 섰다. 맛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와서 산책도 하고 시장 구경도 하다 보니 비가 찔끔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라기엔 왜인지 야키니쿠집에 들어갔다. 일본은 소고기 육회 먹고 집단 사망한 사건이 있어서 소 육회는 금지인데, 말고기 육회는 있었다. 사실 야키니쿠집 가서 달라고 하면 주기도 한단다. 야키니쿠의 본고장 한국에서 온 내가 필살의 기술을 펼치며 고기를 구웠건만 촌놈들이 고기를 바짝 익혀 먹더라. 뻘걸 때 먹어야 제맛이지 소는 쯧쯧...



고기를 다 먹고 동네로 돌아가는 로망스카에서도 죽음의 대부호 게임은 계속됐다... 제발 재워줘를 속으로만 외치며 머리가 터질 때까지 대부호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도쿄에 도착했는데 집에서 쉴 수가 없었다... 바로 오코노미야키집으로 가서 술을 마셔야만 했다... 이쯤되면 이들이 나랑 놀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이들과 놀아주는 꼴이었다...


오코노미야키집에서 특별주문해서 먹은 프렌치토스트


제발 옷만이라도 갈아입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고 잠깐 집에 갔다 왔거늘 지옥같은 술파티는 끝날 줄을 모르고 처음 가는 와인바 마유에까지 흘러흘러 갔다. 이쪽저쪽에서 술을 받아 마시다보니 내 앞에 어느새 잔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이때부터였던가... 치쨩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하나가 취객 상대하기 싫어서인데 오늘은 치쨩이 그 취객이었다... 테이블에 엎어지더니 자리 옮길 때까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겨우 깨워서 나오니 굵은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는데 굳이!!! 시부야 한복판까지 가서 중국요리를 먹어야겠단다!!! 택시타기도 애매한 거리라 치쨩 부축해서 시부야까지 걷고 보니 죽을 맛이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드디어 집에 가나 했더니 최종 타나행... 치쨩이 웬 아저씨랑 사라져서 걱정돼서 전화를 계속 했는데 알고 보니 늘 있는 일이라 해서 안심하고 집에 가서 이틀만의 꿀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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