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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May 06. 2019

그 거리의 여자

2018.4.3 ~ 2018.4.17 ⑧, ⑨, ⑩, ⑪, ⑫

아침 11시까지 나나메 2층에서 잤던 것이 생일날 아침의 기억이다. 치쨩 집으로 얌전히 돌아와서 잔 모양인지 고양이랑 놀면서 TV에 나오는 오타니 료헤이를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오타니 료헤이... 다이스키... 겍콘시테...



어김없이 브런치를 차려주는 치쨩... 오늘은 스파게티다. 문제는 이 아이 의외로 손이 크다는 것... 식당이나 가야 배부르다고 남기지 집밥을 남기기가 곤란해 꾸역꾸역 다 먹었다.


적어 보이죠? 적어도 1.5인분...
하트모양 토마토는 후식

어느 순간부터 치쨩네 고양이도 나를 너무 좋아해서 앉아만 있어도 올라타서 침 흘리고 그르릉대고 난리다. 한참을 놀다가 치쨩이 산책을 가자고 해서 하라주쿠까지 걸었다. 타코야키를 테이크아웃해서 요요기공원으로 향했다. 나중에 들은 거지만 치쨩은 이렇게 부담없이 불러 놀 수 있는 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어서 그냥 내 존재 자체가 고마웠던 모양이다.


쓰레기 아니고 타코야키임


오늘도 가게는 같은데 코스 순서가 조금 다르다. 치쨩은 다음날 출근이라 먼저 가고, 나는 아침까지 신세를 졌던 나나메로 먼저 갔다. 감독이었나 누가 쐈는지 생일이라고 니콜라시카를 돌렸는데, 와... 기억도 사진도 없다.


다음날은 위클리맨션 체크아웃하고 맛스네 집으로 가는 날이다. 장장 4개월을 꼬셔 주었으니 예의상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았다. 원래 동네에서도 잘 재워주는 집으로 유명했는데, 이제는 나의 본집 같이 돼 버렸다. 방이 하나 있고 나는 거실에서 자야 하니까 프라이버시는 없다고 미리 경고를 주어서 겁을 먹었는데, 예상 외로 너무 아늑한 부분이었다...


마사지체어의 쩌는 바이브...


맛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우나기동집으로 향했다. 맛스는 요리사라 그런지 뭐든 맛보는 걸 좋아하고 일단 가게에 들어가면 제일 비싸고 좋은 음식을 시킨다. 때문에 있는 동안은 상당히 허리가 휘었다.



점심 먹고 들어와서 낮잠 자고 나면 저녁 생각 하는게 이집의 일과다. 이날은 저녁으로 라멘을 먹자고 했는데, 돈코츠 진한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되도록 정크스러운 걸 먹고 싶다고 하니 라멘지로가 행선지로 결정됐다. 일본 식당 시스템은 아직도 잘 적응이 안 된다. 식권을 내야 되는 집이 있고 자동 주문이 되는 집이 있고 일단 식권 뽑아서 토핑은 구두로 말해야 하는 집도 있다. 지로는 기름의 양이나 숙주 등을 요리하시는 분한테 말해야 되는 시스템이었다.



숙주 이빠이 담긴 그릇이 맛스 거다. 숙주 저만큼 안 담아도 양이 어마어마해서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일본에만 갔다오면 몇 키로씩 반드시 쪄 왔던 것이...


오늘은 하나쨩이 바텐더를 하는 날이라서 꼭 잔지바루로 오라는 치쨩의 신신당부를 듣고 그리로 향했다. 좀 마시고 있으려니 갑자기 주인 타츠야상이 케익과 샴페인을 들고 나왔다 ㅋㅋㅋㅋㅋ 설마 잔지바루에서 생일 축하를 받을 줄이야...



타나로 가니 카케이랑 이리에상이 있어서 아이돌 메들리를 하며 놀았다. 옛날에는 무조건 사람 많은게 좋았는데 이제는 소수정예로 재밌게 놀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카케이랑 이리에상은 아이돌 덕후인데, 많이들 아시다시피 일본에는 지역돌도 있고 지하돌도 있고 아이돌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이리에상 최애는 네기코, 카케이 최애는 갱퍼레이드다. 말로만 듣던 아이돌 응원법들을 배웠다. 마시다가 타나다이가 숙취에 좋다는 매실 엑기스를 줘서 먹고 나왔다.


그리고 나나메에 갔는데 텟쨩이 최근에 전철 타고 미츠코시마에 가다가 한글 표기를 기억해 와가지고 쓰는데 너무 귀여웠다는 이야기...


이 정도면 거의 맞은 거 아닌가요


다음날은 시오링과의 점심. 다행히 이번엔 멀리는 안 잡았다. 아오야마 플라워 마켓?에서 만나자기에 갔더니 꽃다발을 사줬다. 뭐랬더라 30살이 넘은 여자한테 꽃을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잊어버렸다. 이런저런 사건들도 있었지만 역시 생일 챙겨 준 건 고마운 일이다. 시오링 생일도 얼마 남지 않아서 나도 꽃다발 하나 만들어서 안겨드렸다.


꼭 남자한테 받았다고 하라고 했다. ㅋㅋㅋ
꽃에 둘러 싸여 식사


디저트로 OL이랑 멋쟁이 맘들이 모여 있는 카페에 가서 딸기 음료를 마시고 헤어졌다. 봄이라서 그런지 여기도 꽃이 있었다.



이날은 약속이 두탕이었는데, 시오링이랑 헤어진 다음에는 롯폰기에 가서 메구미랑 사토미를 만나기로 돼 있었다. 이것도 다소 복잡스러운데... 한국에 있을 때부터 나를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알려 줄 순 없지만 '키레이계' 옷을 준비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니 '키레이계'가 뭐야 대체... 어디 가는지는 알려 줘야 뭔 옷을 준비하든지 할 것 아닌가... 폭풍 불만 속에서도 일단 얌전히 갔더니 종착지는 리츠칼튼 호텔이었다.



리츠칼튼 애프터눈티가 이 아이들의 선물이었다. 이 정도면 말해 줘도 되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고마웠다. 또 하나의 꽃다발을 받고 쇼팽의 녹턴 9-2 생연주가 흘러나오니 행복하면서도 하 이런데 애인이랑 오고 싶다... 라는 욕심이 엄습하는 부분... 택시 에스코트까지 받으며 돌아와 저녁 약속이 있다고 뻥을 치고 집으로 올라갔다. 꽃다발 하나는 타나에 가서 치쨩에게 줬다. 이후 사진이 없는 걸 보니 사진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마신 듯하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됐다. 그렇게까지 어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모두 내가 돈까스에 환장한다고 알고 있다. 물론 돈까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넘버 쓰리 안엔 들어갈 것 같지만... 그래서 맛스, 유키쨩과 우에노있는 백년 넘는 전통의 돈까스집으로 갔다. 기름 자체가 좋은 기름이어서 맛있었다. 그리고 비쌌다.


사진은 맛없게 찍혔다.


먹고 나오니 아메요코 시장을 구경하자고 해서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사람에 치여가며 관광객 다운 리액션을 폭발시켰다. 맛스는 자기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인지 조금만 눈에 띄는 가게가 보이면 가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그러니까 직선 보행이 불가하다. 이때만 해도 내 눈치를 어느 정도 봤지만 이후로는 전혀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이후로는 가기 싫은 데는 안 가겠다고 말하곤 한다. ㅋㅋㅋ



엄청 저렴하고 회사원들이 바글거리는 선술집에서 한잔씩 했다. 싼만큼 굉장히 술이 묽어서 나로서는 마시기 쉬웠던 기억이다.


마지막 날로 계획된 날짜였으니 당연히 고주망태가 될 계획이었다. 말했듯 5월에는 단체 한국 여행이 계획돼 있었는데, 내가 항공권부터 숙소까지 전부 다 처리했다. 그래서 잘 가지 않는 나이마에서 모두의 개인정보를 받아서 티켓을 사고 타나로 갔다. 내가 DJ를 하면 얌전히 들어주는 유일한 동네 사람 카즈상이 아내 미키쨩을 데리고 타나로 왔다. 미키쨩은 아프지만 내가 마지막 날이라고 눈썹만 그리고 나와 주었다. 이 분은 쥬얼리 브랜드에서 일하는데, 또 생일이라고 귀걸이랑 반지 세트를 선물로 주었다. 귀에 구멍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거늘 피어스를 주었긴 했지만...


분위기만 보시라.


꽤 사람들이 몰려 바글바글한 가운데 아침 가타야까지 갔다. 나는 비행기 시간도 있고 먼저 돌아갔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코스마까지 갔다. 코스마는 가타야보다 더 대낮까지 술을 퍼마실 수 있는 가게다.


오카쨩의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말을 그냥 흘려 듣지 말아야 했다...


원래 비행기는 이날 오후 네시 경이었다. 집에 돌아와 몸상태를 보니 몇 시간이라도 자지 않으면 위험하겠다 싶어서 ANA에 전화를 했다. 본디 저녁 비행기로 옮길 생각이었다. 상담원이랑 통화를 하다 보니 취소를 하고 저녁 출발 비행기를 다시 사야 하는데, 8000엔 정도 든다는 말에 그 정도면 해도 되겠다 싶어 바로 질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카드 사용 SMS에 무려 108000엔, 그러니까 110만원 정도가 찍힌 것이었다. 분명 108000엔에서 100000엔을 빼고 들은 것이었다. ㅋ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하네다-김포 구간, 그것도 이코노미를 백만원 내고 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유키쨩에게 대신 전화를 부탁해 돌아가는 티켓을 전부 취소했다. ㅋㅋㅋㅋㅋ 그러니까, 돌아갈 수 없게 돼 버렸다. 심지어 정신이 없어 슬슬 면접 날짜를 부르는 회사의 문자도 이틀인가 씹었다. 인생 참 드라마틱하다.


아직 마시고 있는 치쨩에게 전화를 해서 코스마로 갔다. ㅋㅋㅋㅋㅋ 조금 더 마셨다가는 토할 것 같아서 진져에일 한 잔을 마시는데 웬 남성 고객이 ㅋㅋㅋㅋㅋ 와인을 억지로 먹였다. 30분을 못 버티고 치쨩 집으로 가서 하릴없이 고양이랑 놀다가 도미노 피자를 시켜 먹고 다시 마시러 나갔다. 모두 나를 양껏 비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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