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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Jul 21. 2016

이기주의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영화 ‘부산행’ 김의성

논란과 기대 속에 영화 ‘부산행’이 개봉했습니다. 제69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섹션에 공식 초청돼 세계 언론과 평단의 환호 얻었던 이 작품은 ‘한국형’ 좀비물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재난이 벌어진 대한민국, 그 가운데서도 부산행 ktx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다 보니 극 중에 상당히 많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평범한 소시민도 있고, 개 중 목소리가 커서 무리를 주도하는 이도 있습니다.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아수라장 속에서 나 혹은 내 가족들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부산행’ 속 인물들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까지 챙기다가는 내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이기적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탓입니다. 소극적으로 군중 속에 숨거나, 적극적으로 타인을 배척하는 등 각양각색의 이기주의가 이 영화 속에서 발현됩니다.


이 중에서도 배우 김의성이 맡은 용석 역할은 과연 이기심의 끝판왕입니다. 고속버스 회사 상무인 용석은 매우 현실적이고 냉정한 성격인데요. 초반에는 갑자기 닥친 재난에 노련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이것저것 의견을 내곤 합니다. 그러나 이내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자 오로지 자신의 목숨만을 지키기 위해 밉살스러운 행동들을 하기 시작하죠.


용석은 시간이 흐를 수록 밉살스럽다는 표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악랄해집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 캐릭터들의 희생을 묵살하고, 급기야는 이들에게 ‘감염자’ 딱지를 붙이기도 하죠. 이기주의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수준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대기업 상무 쯤의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상당 부분 인간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지난 12일 ‘부산행’이 국내에서 첫 공개됐습니다. 누구 한 명을 주연이라고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제 몫을 다한 캐릭터들은 이날 골고루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시사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도 어마어마한 취재진이 몰려 쏟아지는 관심을 입증했죠. 당연히 욕이 절로 나올 만큼 비열했던 용석 역할에 대한 질문도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용석을 연기한 김의성은 “답답합니다”라며 장난 섞인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영화가 개봉된 후 대중의 욕을 한몸에 받을 걱정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저는 저희 영화가 적당히 잘 되면 좋겠는데, 아주 잘 되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김의성은 오랜 연기 인생 속 다양한 악역들을 소화하며 영화 팬들의 찬사와 미움을 동시에 얻어왔는데요. “제가 그 동안 맡았던 악역들을 모은 것보다 훨씬 비호감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라며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변명을 하자면, 우리 사회에 정말 있을 법한 인물, 이기적이고 사회 돌아가는 것에 익숙한 보통 아저씨가 이런 급한 상황을 만나면 얼마든지 절대악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용석을 변호(?)했습니다. 보는 이들이 이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이 잘 표현했기를 바란다며 베테랑 배우다운 면모를 뽐내기도 했죠.


이런 용석을 한참 욕하다가도, 문득 그의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용석은 더 말 할 것도 없이 ‘나쁜놈’이지만, 어쩐지 연민이 들고 공감되는 구석도 있습니다. ‘부산행’을 보신 후 용석을 변호할 지, 아니면 더 욕을 해 줄 지를 친구들과 토론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진] ‘부산행’ 스틸컷, 기자간담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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