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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Dec 01. 2016

시국 비판한 촌철살인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대한민국은 국토 면적에 비해 원자력발전소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현대 과학의 총아라고도 할 수 있는 원전은 시설만 갖춰진다면 쉽고 저렴하게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각광받았죠. 그러나 그 위험성은 편리함을 뛰어 넘습니다.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난다면 이 땅에서 사람의 씨가 마를 수도 있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그랬듯이요.


‘연가시’ 박정우 감독의 신작 ‘판도라’는 우리나라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는 가정 하에 벌어지는 일들을 그립니다. 아무런 대비책 없이 눈 앞의 이익만을 좇다가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린 한반도는 공포 이상의 감정을 자아냅니다. 영화 속 원전 사고만큼 무서운 것은 무능한 정부였습니다.


지난 29일 열린 ‘판도라’의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박정우 감독은 “맨 처음 이 영화를 기획했을 때 이런 순간(기자간담회)이 올 지를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마음이 편하다”며 개봉을 앞둔 소감을 밝혔습니다. 원전이라는 국가적 사업에는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혀있는 탓에, 이를 비판하는 ‘판도라’에는 외압 때문에 개봉이 미뤄졌다는 설까지 돌았죠.


박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원전은 완벽하게 안전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조심스레 말했는데요. 특히 사고 후 대책이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그는 이 영화의 현실성을 90% 이상이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국가적 위기를 다룬 영화이기에 정부 주요 인물들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판도라’에서는 배우 김명민이 젊은 대통령으로, 이경영이 국무총리로 등장합니다. 이에 대해 최근 열렸던 ‘판도라’ 제작보고회에서 박 감독은 “대통령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짜증이 나고, 비현실적으로 표현하면 말이 안 된다며 욕을 먹는다”는 솔직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이날도 그는 해당 발언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고 웃기도 했죠.


흥행을 기대하냐는 질문에 박 감독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게… 다른 영화가 있어서…”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현 시국이 영화 같다는 것이었죠. ‘판도라’는 4년에 150억을 들였지만 그쪽은 40년 준비하고 몇 천 억을 들인 데다가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있으니 도무지 이길 수가 없다는 너스레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판도라’가 만들어진 후 나라꼴이 엉망이 됐는데요. 편집 측면에서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듯했습니다. 박 감독은 이 영화의 궁극적 목적은 원전 비판이지 위정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며 오히려 시국에 맞는 대사들을 쳐 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판도라’에는 박 감독의 유머러스한 일침들처럼 따끔한 지적들이 이야기로 펼쳐집니다. 이 작품이 판도라의 상자 깊숙이 숨겨진 희망을 나누는 공론장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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