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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Dec 02. 2016

애드립의 제왕이 눈물로 전한 애환

영화 ‘커튼콜’ 박철민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것처럼 영화 ‘목포는 항구다’ 속 박철민의 대사입니다. 지금까지도 회자됨은 물론 박철민을 원조 신스틸러로 만든 한 마디죠. 이후 그는 다수의 작품에서 능청스러운 연기력과 화려한 애드리브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왔습니다.


가난한 삼류 에로 연극단이 예술을 향한 갈망으로 의기투합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커튼콜’에서, 모든 사람들은 극 중 박철민을 이 대사로, 개그맨 출신의 웃긴 배우로 기억합니다. 막상 그는 무대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배우 출신 제작자인데 말이죠.



상당히 현실적인 설정입니다. 실제로 대중이 접하는 배우 박철민, 인간 박철민 모두 늘 유쾌하기만 한 모습이니까요. 그가 선물하는 웃음 뒤의 애환은 아무도 모릅니다.


박철민은 2일 열린 ‘커튼콜’의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류훈 감독과 함께 영화 속 철구 역을 어떻게 묘사할 지 상상하던 도중 ‘목포는 항구다’의 대사를 인용하게 된 배경을 밝혔는데요. “관객들이 이입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차라리 유행어를 터뜨렸던 사람의 내면이 진솔하게 전달된다면 더 이입이 쉬울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박철민은 한 번도 꺼내 놓은 적 없던 진솔한 고백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보여드렸던 모습이 때로는 식상하기도 하고요, 전형적이기도 합니다. 지치시는 관객들도 있겠지요. 그런 느낌을 받으며 고통스럽고…”라고 말하던 그는 감정이 북받친 듯 마이크를 내려 놓고 눈물을 삼켰습니다.


박철민은 “그런 시간들이 있었는데, 진지한 역할이나 악역도 하고 싶었어요. 그런 것을 할 때면 신이 났거든요. 저도 몰랐던 눈빛들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면 행복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철구는 저한테 아주 소중한…”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그간의 회한이 섞인 뜨거운 눈물이 흘렀죠.


이어 그는 “작은 배우의 실제 가슴앓이 이야기도 많이 들어가 있는 역할이기 때문에 어쩔 때는 감격스럽고, 부끄럽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영화였지만 어느 현장보다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영화입니다”라며 울음을 삼켰습니다. 배우들도 울고, 감독도 울었습니다. 무척 가슴이 아린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밝은 모습을 되찾은 박철민은 영화에서처럼 연극 도중 돌발 상황이나 실수가 있었냐는 질문에 특유의 맛깔나는 말솜씨로 경험담을 전했습니다. 그는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를 할 적 생리현상 때문에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는데요. 공연 전 식사를 맛있게 하고 무대에 올랐는데 신호(?)가 오더랍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상대 배우에게 “화장실이 어딥니까”라고 물은 후 10분간 자리를 비웠다는데요. 마침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져 큰 소리로 휴지를 달라고 외쳤는데 그 소리가 관객석에까지 다 들렸다고 덧붙여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커튼콜’의 예상 관객수에 대한 물음이 나오자 “100만이 들면 기절할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 100만이란 ‘판도라’ 같은 큰 영화의 1000만보다 크게 다가오는데요. 만일 100만 관객을 달성한다면… 현재 우울한 계절, 분노의 계절이지 않습니까. 촛불을 100만개 사서 시민들에게 나눠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유지수가 원래 촛불을 팔던 노점상들은 어떻게 하냐고 말하니 박철민은 멋쩍게 웃으며 “그 분들한테 싸게 파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대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애드리브의 황제가 힘겹게, 용기를 담아 전한 배우로서의 애환은 뭉클했습니다. ‘커튼콜’에는 이 같은 예술인들의 희노애락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대작들이 범람하는 12월, 작지만 큰 영화 ‘커튼콜’로 색다른 재미를 느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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