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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자 Feb 02. 2016

너 요즘 힘들어보인다?

근데 네 얘기를 들을 생각은 없고, 내 얘기를 들어 봐.

니 말이 첫 문장부터 틀렸다는 말 한 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그들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난 늘 그렇듯 입을 다물고 그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요즘 힘드니? 내가 너무 무서워? 내가 신입사원 때 나는 ㅇㅇ팀이었지만 내가 회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걸 보고 ㅁㅁ팀으로 데려갔어. 그리고 거기서 입사 3개월 만에 혼자 해외출장을 가서 프로젝트 다섯 건을 따왔지. 사업부장님은 그 당시 내 팀장보다 나를 더 신뢰하셨어. 십 몇 년동안 B를 맞은 적은 한 번이었지. 팀장이 나를 싫어해서. 나는 fast learner야. 근데 너는 slow starter인 거 같아. 근데 스트레스 받지 마. 그러면 오래 못 가."


"ㅇㅇ씨 회사생활 어때요? 대학 때 아르바이트 해봤어요? 저는 아르바이트가 재밌어서 주방 설거지랑 웨이터 이런 걸 몇 년씩 했었어요. 전 그런 일도 군말없이 잘 하거든요. 그렇게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회사 들어오기 전에 이미 사회생활 경력이 7년이었어요. 근데 사람에 따라서 그런 일을 잘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 같더라구요."


"요즘 표정 진짜 안 좋아보여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런 얘기 듣죠? 그게 윗 사람들 눈에는 다 보이거든요. 윗 사람들 눈은 속일 수가 없어요. 근데 힘들 때는 자기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해요. 동기들하고만 얘기를 하면 소용이 없어요. 윗 사람들이랑 말을 해야해요. 그리고 그러려면 술을 마셔야 해요. 술은 마셔야 느는 거에요. 저도 술을 마시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구요. 저는 이제까지 술자리를 빠진 적이 없어요. 제가 살아남은 비법이에요."


이들과 사무실에서 근 11시간을 부대끼고 나면 회식 자리에서 3시간을 더 부대끼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 안 보내려는 따가운 눈길을 받으며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주에 한 번은 있는 일. 이 짓을 6개월 째 하고 있다. 통장에는 돈이 들어오고 나는 그 돈으로 50분에 10만원을 내는 상담을 받으러 간다.


제일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은 내가 언제부터 표정이 망가졌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 것은 사실 한 5개월인데, 지난 5개월동안 그들은 낌새조차 몰랐다. 안전하다고 믿은 사람에게 털어놓은 고충이, 인사에 흘러 들어갔고, 그게 흐르고 흘러서 팀장과 팀원들 귀에 들어갔다. 그제서야 그들은, 마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랐다는 듯이 말을 했다. 넌 처음엔 안 그랬다고. 원래는 안 그랬다며.


"ㅇㅇ아, 그게 사회생활이야. 원래 돈 버는 게 힘든 거야. 너만 힘든 줄 알아? 회사 다니는 사람들 다 그래. 그게 돈 버는 거야. 남의 돈 벌기 힘든 지 이제 알았니? 그렇다고 니가 거기 나오면 어떻게 돈 벌려고? 엄마아빠도 늙었잖아. 언제까지 너 돈 대줄 수 없어. 어렸을 때부터 보면 니가 항상 예민하고 유별나게 굴잖아. 좀 감사하려고 해 봐. 그리고 니가 능력이 없어서 더 좋은 회사 못 간 건데 어쩔 거야. 만족할 줄 알아야지. 너무 돈돈 거리지 말고. 그리고 주말에는 연애 좀 하고. 지금 연애 해야 결혼 하지."


애초에 가족이란 건 없었다.


안다. 사회생활 잘 못 하는 거. 사회생활을 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야속하게 목숨이 붙어 있는 것.

그리고 좀 바꾸려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무리 주변에서 얘기해줘도 쉽사리 듣지 않는 거 안다.

꽉 막히고, 고집 세고 - 이상한 강박이다. 안다, 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름 냄새와 돼지 비린내로 쩔었다.

오늘 같은 밤은 썩 잠이 오질 않는다.

낫지 않는 입병과 목디스크로 마비 된 손가락 감각, 망가진 위장, 어두워지는 낯빛, 떨어지는 체력. 근데 이건 뭐 회사를 다니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내일 또 피곤에 몽롱한 상태로 11시간을 겨우 버티겠다. 그리고 반복, 또 반복...


죽어야 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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