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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포드 Aug 17. 2021

다만 헤매고 싶지 않았을 뿐.

신입사원, 명리를 다시 들추다.

"그래서 가고 싶은 부서는 어디죠?"

"그게…"

“따로 가고 싶은 데가 없는 거예요?"

"어… 정해주시면 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종 면접의 한 장면 같다. 아니다. 신입사원 교육을 마친 후 가진 부서 배치 면담 때이었다. 회사에 대해 압축적으로 배운 두 달이 지난 후이었다. 그럼에도 가고 싶은 부서가 잡히지 않았다. 취업난 속 얻어걸린 회사에 들어와서 이었을까? 아니다. 내가 합격한 회사는 취준생 시절 0순위로 바랐던 곳이다. 극한의 취업난 속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 그러나 막상 붙으니 다음이 그려지지 않았다. 이건 무슨 경우인가.


그래도 운이 좋았다. 배치받은 곳의 팀원들은 좋은 분들이었다. 다만 생각 없는 결정에는 분명 대가가 따랐다. 구조적으로 야근이 많은 팀이었다. 일이 넘쳐났다. 실적 증진이 아닌, 사고 방지를 위한 일들이 몰아 쳤다. 퇴근은 밤 11시. 2년 넘게 대부분 그랬다. 몇 억이 걸린 사고도 터져댔다. 감당이 안됐다. 이쯤 되니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가끔 8시 정도에라도 집에 갈 때면 어색했다(출처: 오마이뉴스).

“왜 나는 이 회사에 그렇게도 오고 싶었는가?”


나만의 길을 찾아왔다 자부했다. 대학시절 다채로운 딴짓을 벌인 끝에 이곳에 들어섰다 여겼기 때문이다. 제대 후 복학생 시절, 책을 한 권 내고 싶었다. 다만 쓸 게 없었다. 택한 건 색다른 배낭여행. 휴학을 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시작으로 동서유럽, 발칸반도, 카자흐스탄을 쏘다녔다. 다행히 살아 돌아왔다. 끝내 책을 한 권 냈다.


쏘다니다 보니 해외와 관련된 일이 맞겠다 싶었다. 마침 해외영업 관련 인턴 공고가 떴다. 운이 좋았다. 블라인드 전형 덕에 바닥인 학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인턴을 마쳤다. 러시아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전공과 무관한 러시아어를 공부 해댔다. 제2외국어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영어나 제대로 할 걸 그랬다). 한국에 돌아왔다. 운이 터졌다. 바라고 바라던 회사에 붙었다. 학교는 애매했고, 학점은 바닥이었지만 붙었다. 뻔한 스펙 쌓기 대신 나만의 길을 개척해낸 결과라며 뿌듯해 했다.


뿌듯하긴 무슨. 정작 붙었으나 가고 싶은 부서조차 없을 뿐이었다. 부서 배치받은 후엔 야근만 해댈 뿐이었다. 미래 계획? 전무했다. 어떻게 된 건가. 분명 나만의 길을 개척했다 생각했는데, 정작 취업 후 계획은 전무했다니. 나만의 길은 무슨, 그간 나 역시 그저 취업을 위해 조금 다른 양태의 스펙을 쌓았을 뿐이었던가. 당혹스러웠다. 무언가 헤맨 기분이었다.        

시베리아 열차 구간은 9,288km. 방황만 1만km 넘게 했다는 말인가(출처: Getty).

삼쏘 결의

 

형님 한 분께 연락했다. 대학시절 책 출간이라는 길을 제안한 분이었다(말이 형님이지 회사 이사님 뻘이다. 기꺼이 형님이라 부르게 해 준 그분께 늘 고마울 따름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형님은 명리 강의를 하는 분이었다. 그렇기에 만날 때마다 내 사주를 보며 조언을 해줬다. 이번에도 답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삼겹살 집에 앉았다. 소주 한병이 나왔다. 심정을 토로했다. 회사가 싫은 건 아니다. 이 시국에 0순위로 바라던 대기업 이라니. 분에 넘치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결혼하고 집 사는 걸 목표로 삼자니 애매하다(어쩌면 제일 어려운 거라 당기지 않았나?). 무턱대고 그랬다간 혹시 또 헤맸다는 기분이 들까 겁이 난다. 일단 진정 내게 맞는 나만의 목표부터 찾고 싶다. 다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뭐 그런 말을 쏟아냈다.


"그동안 보내준 녹음 파일은 들어봤니?” 형님이 입을 열었다. 형님께선 그간 명리 강의 녹음 파일을 보내줬다. 물론 난 듣지 않았다. 바쁜데 이걸 어떻게 듣나 싶었다. 그런 내게 형님은 문득 명리 공부를 같이 해보자 했다. 내 길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될 거 라면서. 솔직히 영업이다 싶었다. 그런데도 해보겠다 답했다. 평범한 대학생인 내게 책 출간이란 화두를 던져준 이었다. 그 결과 내 이름이 박힌 책이 나왔다. 이번에도 형님 말을 들으면 건질 건 있겠지 싶었다.

그렇게 삼겹살과 소주한잔에 넘어갔다(출처: 헬스조선)

빼앗긴 주말에도 봄은 오는가.


괜한 말이었다. 수업 시간은 토요일 아침 9시. 그것도 매주. 미친 거 아닌가. 군대 제대 후, 과연 저 시간에 깨어있던 적이 있을까 싶었다. 곤욕 그 자체이었다. 불금에 미팅이라도 했다면 지옥이었다. 가수면 상태로 몸을 가누기 바빴다.  


더 큰 난관은 따로 있었다. 알아듣지 못했다. 놀랍게도 명리 공부가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당시로부터 5년 전이었다. 연애가 하도 풀리지 않아, 궁금함에 이 책 저 책 뒤져보며 명리에 입문했다. 그 덕에 개념과 공식은 알았다. 다만 그게 다다. 공식의 원리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빨리 써먹고자 하는 마음 탓이었다. 단순 공식 몇 개로 한 사람의 복잡한 삶이 읽힐 리 만무했다. 그 결과 5년 후, 알아듣지도 못한 채 앉아 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소중한 주말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계속했다. 사명감 때문은 아니었다. 이걸 배우면 덜 헤매겠지 하는 생각이었던 듯하다.


진도가 나갈 때마다 내 사주에 적용해봤다. 사주를 보니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는 내게 괜찮은 곳 같았다. 부서이동을 고려하던 내 상황을 들춰봤다. 넘어가고자 했던 부서가 내게 맞는 곳인지 명리로 검산했다. 적절한 이동시기도 살펴봤다. 어렵사리 손을 들었다(부장님 커피 한 잔 하시죠!). 다소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그래도 성사되었다. 덕분에 조금은 숨통이 틔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명리 덕분이라 여기진 않는다. 다만 명리는 예민한 결정에 앞서 근거를 세우는데 분명 도움이 됨을 느낀 계기가 되었다. 현실에 적용되니 할 맛이 났다. 더 알아보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을 깨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장님과 단 둘이 마셨던 아메리카노는 어떤 맛이었을까.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다(출처: 이데일리).

회색 인간의 좌표 탐방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에서 묻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하냐고. 놀러 가자, 미팅 하자, 골프라도 배우자고 해도 나는 언제나 불가능했다. 토요일 아침이 묶여 있으니 어쩌겠는가. 조용히 고백했다. 명리를 공부한다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나를 너머 다른 이의 생년월일시라는 좌표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간 인간관계에 대한 내 자세가 빛을 발했다. 나는 회색지대 같은 사람이다. 엄청 친하진 않되 그렇다고 척을 지지는 않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쉽게 말해 늘 아싸 직전 단계로 살아왔다. 그 덕에 주변에는 다양한 이들이 많았다. 취준생과 직장인은 물론이었다. 사업과 투자로 큰돈을 번 이도, 고전하는 이도 있었다. 연애 고자도 있었고(내가 대표적인 예다), 이성이 너무 꼬여서 고민인 이도 있었다. 기혼자도 있었다. 그들의 좌표를 들춰봤다. 명리가 현실에 적용되는 방식을 익히는 계기이었다. 꽤나 짜릿했다. 그네들 고민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에 만족해하는 상대의 반응을 볼 때마다 그러했다. 잘 풀리지 않을 때도 많았다. 부족한 내 실력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명리를 더 파봤다. 어쩌다 이러고 있나 싶긴 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 와중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는 분야가 있었다. 바로 소개팅. 상대가 누구이든 명리가 나오는 순간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애프터로 쉽게 이어졌다. 물론 약발이 오래가지 못했다. 온 주말이 명리로 잠식된 나의 상황은 금방 탄로 났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것 명리 공부나 더 하자 싶었다.

소개팅을 할 때마다 상대방의 생년월일을 보내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생겨서 다행이다(출처: 중앙일보).

어쩌다 보니 부레옥잠


매주 명리를 공부하고 여러 좌표를 뜯어보며 느낀 게 있다. 대체로 비슷하다는 것. 처한 상황에 따라 상세 고민 내역은 다르다. 다만 범주는 비슷하다. 취준생이었던 게 엊그제인데, 어느덧 퇴준생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유튜버에게 눈이 간다. 이번만 끝내면 사업이 안정될 듯했으나, 또다시 잡음이 생긴다. 다들 사기꾼 같다. 코스피는 천정부지인데, 왜 내 계좌는 매번 귀여운지 모르겠다. 결국 도지가 답인가 싶다. 그 와중 결혼 이라니. 연애도 벅찰 뿐이다. 소개팅 어플마저 이력서를 요구한다. 조급 해진다. 내게 맞는 돈벌이, 내게 딱인 그분을 찾기 위한 시도는 다채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얻은 건 없다. 열심히 부유만 하는 듯하다. 고민만 부푼다.


어쩌다 우리는 고민에 가득 찬 부레옥잠이 되었을까. 혹 남의 성공사례를 찾아보고 무작정 따라 했던 건만은 아닌지. 그게 자신에게 맞는 전략인지 따져보는 건 제쳐두고 말이다. 이 지점에서 명리는 괜찮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명리는 남이 아닌 온전히 나의 방향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로!

동양철학의 근간은 '순환'이다. 자연은 곧 순환이고, 그에 속한 인간 역시 순환하는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명리 역시 마찬가지다. 태어난 날을 좌표로 삼고, 지구가 순환하며 만들어내는 흐름과의 관계를 살핀다. 생년월일시라는 좌표 속에서 내가 속한 사회의 속성과 나와의 관계를 파악한다. 그 속에서 내가 키워야 할 무기는 무언지, 나의 그분은 어떤 분인지 옵션을 제시한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만의 무기를 개발해나간다면, 세상에 드러낼 그날은 분명 온다고. 내게 맞는 그분 역시 분명 나타난다고. 예외는 없다. 다만 미리 알고 준비하는 건 좌표 주인의 몫이라고, 명리는 또한 말한다.


앞으로 여러 좌표의 주인들에게 명리가 제시했던 길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우린 동시대에 살고 있기에, 비슷한 카테고리의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비록 다른 이에게 제시된 길일지라도, 당신에게 역시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믿어 본다.


“인생에는 가장 중요한 두 날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태어난 날이고,

  두 번째는 그 이유를 알아낸 날이다.”


 영국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의 말이다. 내게는 명리가 그런 역할을 했다. 생년월일시라는 좌표 속에 암시된 길을 찾아낼 때마다 반가웠다. 앞으로 당신에게도 그러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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