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르타리 이야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력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장기화되고 있다. 특히 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취향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물건을 배송받기가 어려워졌다. 농업 종사자 감소로 인해 감자 재배가 어려워지자 패스트푸드점의 사이드 메뉴를 주문하지 못하는 상황, 원두 수확 환경 변화 때문에 이전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 커피를 마셔야 하는 현실도 모두 팬데믹이 촉발한 글로벌 유통체인의 균열이 원인이다. 이렇게 불확실해진 생활환경 속에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자구책을 마련하기에 분주하다. 우리나라도 스마트 팜, 풀필먼트 센터, 다크 스토어 등을 다수 구축하며 원재료 생산 및 상품 유통구조를 변화시키는 중이다.
이렇듯 빅데이터와 디지털 관리 체계를 활용한 공간도 중요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생산과 유통의 거리를 더 좁히려는 시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 성수에 위치한 르타리는 음식에 필요한 재료를 직접 기르며 농장과 식당을 일체화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공간 운영주체인 모노스페이스는 ‘더 나은 일상을 디자인하는 실천가 그룹’이라는 슬로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도시계획 솔루션 기업이다. 모노스페이스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과 연계한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해왔는데 그때마다 예산 및 사업 진행 문제로 인해 계획 수립보다 나아간 해결책을 현장에 적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약 1년 동안 자체적으로 운영하기에 적당한 사업 규모를 검토한 다음, 2021년 3월 첫 매장을 성수에 오픈했다. 하나의 생활권역으로 묶이기는 하지만, 서울숲이나 뚝섬역 근처처럼 지나치게 상업화된 동네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공간을 열 엄두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르타리는 중간 유통과정을 간소화하여 농장에서 재배한 신선한 작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을 운영 모토로 삼고 있다. 팜 투 테이블은 1960년대 미국의 새로운 사회계층인 히피(Hippie)가 기성의 통념을 벗어나기를 원하며 대량생산 구조에서 만들어진 기성 식품을 기피한 데서 시작됐다. 그들은 친환경 농작과 조리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제철 채소 섭취 문화를 전파했고 그 영향은 사회의 여러 이슈와 연관성을 보이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요즘 수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선식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도, 그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도 팜 투 테이블 때문이다. 또한 환경에 가하는 위해를 줄이는 비건 문화, 원재료의 재배 및 수확 단계에서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포함시키려는 공정무역의 움직임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맥락 속에 있는 르타리는 자그마한 지하 농장과 식당이 결합된 공간이다. 사업 초기에 구상한 스마트 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원래 모노스페이스는 전자체계로 운영되는 스마트 팜을 구축하려 했지만, 30평 규모의 지하공간에 고도로 전자화된 시스템을 적용하기에는 설비 투자 비용이 과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르타리는 농장 운영 방식을 재검토하는 단계에서 구상됐다. 모노스페이스는 건물 지하에서 버섯을 길러 판매하는 사례를 발견하고는 여러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구하면서 공간 운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다시 정리했다. 그들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경기버섯연구소에서 약 두 달 동안 버섯에 관한 이론 교육과 실습 과정을 거쳤고,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아가 지하상가에서 버섯 생육을 통한 소비 및 일자리 창출 구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파악했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온·습도 변화에 자동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춘 지금의 지하 농장이 만들어졌다.
좁다란 계단을 따라 내려간 르타리의 지하농장에는 버섯이 자라는 토대가 되는 배지로 가득하다. 수십 개의 배지에서는 흰느타리 버섯, 노랑느타리버섯, 산느타리버섯, 버들송이버섯, 황금맛송이버섯 등이 자라나는 중이다. 모노스페이스는 가게 영업일 수와 예상 고객 수를 가늠하여 사용할 양만큼의 버섯만 재배하고 수확한다. 사업장 규모 안에서 생산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물량을 계획하고 그것을 유통업자에게 납품하는 보통의 농가와는 구분된다.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버섯보다 생육기간을 좀 더 길게 확보하는 것도 르타리의 차별점이다. 마트나 시장을 방문하면 버섯의 머리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불확실한 판매시점을 감안한 결과물이다. 버섯을 일찍 수확하면 크기가 작아 규격화된 포장지에 담기에도 편하고 곰팡이가 생기는 날짜도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타리는 재배와 섭취가 한 건물 안에서 이뤄지기에 버섯의 영양소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시점까지 키워 식탁에 내놓는다.
올바른 식재료 소비문화를 지향하는 르타리가 지점을 내며 여러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 좋겠지만, 모노스페이스는 아직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며 몸집을 키울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생산과 소비의 적정 규모를 탐색하며 르타리의 내실을 단단히 하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모노스페이스가 성수에서 활동하는 다른 소상공인과 협업하는 모습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빵집 뺑드에코로부터 통밀식빵을 가져와 비건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하고, 서점 낫저스트북스와 가정식을 테마로 한 모임을 운영하기도 하고, 농부 중심의 시장에 참여하며 제철 식재료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이 주변과 함께하는 활동을 거듭하다 보면 르타리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영감을 받은 사람이 르타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세상에 흩뿌리지 않을까? 어쩌면 이러한 활동이 수많은 지점을 운영하는 것과 버금가는 효과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 글. 김예람 에디터/공간 사진. the blank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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