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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버드 Jul 19. 2024

판단의 기준은 흐릿한 게 맞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가 주는 시사점

"뚜렷한 선으로 대상의 경계를 짓지 말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에 '스푸마토 기법'을 도입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색과 색, 대상과 대상 사이를 뚜렷이 구분 짓지 않고 안개처럼 표현하는 기법이다. 그의 대표작 <모나리자>의 옅은 미소가 더욱 몽환적으로 느껴지는 데에는 이 기법의 영향도 있다.

모나리자가 처음부터 다빈치의 대표작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여러 명작 중 하나였던 이 작품은 1911년 도난된 후부터 유명세를 탔다. 파브로 피카소가 절도범이라는 의혹이 생기면서 더욱 그랬다. 모나리자는 결국 2년 뒤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잡힌 범인은 피카소도 아니었고 다른 화가도 아니었다.


'도난사건'은 그럼에도 모나리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극대화시켰다. 그림이 돌아오기 전에도 비어있는 자리를 보기 위해서 관람객이 몰렸다. 모나리자의 인기는, 역설적으로 모나리자를 볼 수 없게 됐을 때부터 커졌다.

'모나리자'를 부르는 조용필

또 다른 역설은 당시 모나리자를 훔친 범인 빈센초 페루지아가 영웅으로 추앙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탈리아 태생이었다. 모나리자 절도에 관해 재판받을 때 "나폴레옹이 나의 조국에서 약탈한 모나리자를 되돌린 것뿐"이라고 했다. 여론은 그에 호응했고, 세기의 명작 절도범이었지만 7개월 형만을 살고 나왔다. 옥살이 중인 그에게는 각종 선물이 쏟아졌다.


페루지아는 진정 약탈 문화재 반환을 위해 사명을 다한 것뿐이었을까. 그는 다빈치의 마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모나리자를 돌려놓고 싶어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절도한 이 그림을 팔고자 피렌체 상인에 거액을 요구했다. 결국 모나리자가 진품임을 알아우피치 관장의 신고에 덜미가 잡혔다.


모나리자는 애초에 약탈품이 아니기도 했다. 다빈치 작품을 애정한 16세기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가 거금을 들여 다빈치 측으로부터 모나리자를 사 왔다. 이에 프랑스 왕실품이 됐다가, 18세기말 개관한 루브르로 옮겨졌다. 나폴레옹 1세는 이 그림을 사랑한 나머지 몇 년 뒤 자신의 침실에 걸기도 했으나, 비난이 거세지자 곧 박물관에 돌려놓았다.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에 모인 인파

모나리자는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이 연간 1000만 명가량의 관람객을 모아 '세계 관람객 1위' 박물관을 수성하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루브르 방문객의 25%는 모나리자만 보고 떠나도 과언이 아니라 해 '모나리자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그림의 가치는 관광수익을 반영해 최대 40조 원까지 매겨지기도 한다.

그런 모나리자의 진정한 가치는 사실 그저 이 그림이 '모나리자'라는 자체에 있다. 도난사건을 비롯한 그림의 500년 생애, 스푸마토 기법, 공기원근법, 삼각형을 이루는 안정적인 구도, 여인의 미묘한 시선과 미소, 눈썹이 없는 이유에 대한 여러 가설 등은 모나리자의 가치와 유명세를 뒷받침해주는 후술일 뿐이다.


뚜렷한 경계선이 아닌 안개로 그린 듯한 이 그림은, 인간사엔 절대적인 것도 영원한 것도 단면적인 것도 없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무수한 영역에서 역사적 천재로 칭송받는 다빈치가 막상 본래 꿈이었던 요리사(!)로서는 빛을 보지 못했듯 말이다. 다름아닌 그 특유의 창의성 때문이었다.

다빈치가 쓴 요리책 '코덱스 로마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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