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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버드 Mar 24. 2023

확실한 즐거움, 오늘 저녁도 한강 라이딩

라이딩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한강이 좋아서 또 나온다. 매일 봐도 매일 다르게 좋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강의 푸르름이 질리지 않는다. 공원도 마찬가지다. 연한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서, 녹음이 우거져서, 낙엽 사이로 강아지와 까치들이 누벼서, 생선가시같이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무채색 매력을 더해줘서 매번 가슴이 벅차다.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날씨가 아니라면 언제나 마음이 한강으로 뜬다.



내게 자전거는 한강을 만끽하기 가장 적합한 수단이다. 적당히 빠르고, 쉽게 지치지 않으며, 마음껏 두리번거릴 수 있고, 자유로운 정지가 가능하다. 건강과 환경에 유익하다는 것은 부가적이다. 아는 맛이 가장 무서운 법이라 했던가. 낯설지 않은 풍경임에도 한강 속에 녹아든 나의 가슴은 언제나 들떠있다. 후회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라이딩은 보통 한강대교에서 시작한다. 반포로 가는 자전거길엔 오르막 고개가 네 번 나온다. 이 연속된 고개들을  '언론고시의 역경'이라 명명했다. 산 너머 산인 게 똑 닮았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인생이 걸린 문제가 돼버렸기에 절대 지치지 않고 한 번에 넘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굳이 그렇게 치열해야 해?" 어느 날 함께 자전거를 탔던 J의 웃음 섞인 질문이 떠오른다. 암, 치열해야지. 허벅지가 터질 것처럼 단 1분만 밟으면 역경 하나 해치웠다고 느낄 수 있다. 이보다 쉬운 성취감 회복이 어디 있을까.




힘든 길임을 알아도 굳이 돌파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양화행이 아닌 반포행이다. '역경'을 극복하며 페달을 밟다 보면 동작대교에 다다른다. 한강뷰 고급 아파트들이 보인다. 건물 이름만 봐도 누가 사는 곳인지 알 정도로 유명한 집들을 보며 생각한다. 언젠가 꼭 저런 곳에 살겠노라고. 이 중 반만 진심이다. 단지 집에서 한강을 보고 싶을 뿐이다. 동네는 중요치 않다.


한강뷰 아파트는 훈장이다. 경제적 성취, 사회적 지위, 이름 날리는 이웃 등. 훈장 완장 다 필요 없으니 그냥 집에서 한강만 보이면 안 될까. 한강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쁠 것이다. 내가 점찍은 동네는 신수동이다. 괜히 돈에 대한 욕심으로 오해받을까 일부러 강남 3구는 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가치가 돈에 방점 찍히면 뭐 어떻냐마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닐 뿐이다. 이루고 싶은 꿈에 떼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는 없다. 난 그냥 한강이 좋다. 풍경은 변해도 변함없이 예쁘잖나.



많이들 그럴 테다. 모두의 눈에 예쁜 것은 비싸고 결국 희소해지는 법이다. 어른의 눈에 드는 것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강은 그렇게 시민의 눈에 사계절 내내 낮이고 밤이고 예쁘며, 그래서 한강을 볼 수 있는 집은 비싸다. 그렇다면 라이딩은 한강을 즐기는 아주 가성비 좋은 방법이다. 집과 달리 풍경도 바뀐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가 웃기게 느껴졌다. 밀접한 거리에서 강 내음까지 맡으며 한강을 즐기는 와중에 '이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집에 살아야지'라며 굳이 반대로 시선을 돌리나.



자전거를 타는 큰 이유나 목표는 없다. 취미이고 힐링이면서 축소된 도전이다. 러닝과 마라톤을 즐기는 일본의 작가 무라카마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대단한' 주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했다. 중요한 건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가는 것이라 적었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라고.  


두 갈래 길에서 힘든 쪽으로 들어섰다. ‘언론고시의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 알면서도 핸들을 돌렸다, 밟기 위해. 낭만이 나의 자산이고 목표이길, 어제의 나와 늘 경쟁하길. 변치 않길 바란다.


'이 정도 동력을 주는 풍경만 있다면 지속적으로 고되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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