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의 햇빛이 눈부셔 손으로 벽을 가렸다. 온통 상아색인 시멘트벽이 반사하는 빛은 직사일광보다 눈에 피로도를 더한다.
이맘때의 햇빛은 한여름의 그것처럼 작렬하지 않는다. 손에 고이도록 두면 아직 뜨겁다기 보단 따뜻하다. 여름 특유의 모래사장 끓는 냄새가 아닌 약간의 단내가 난다. 부드럽지만은 않은 바람이 치마를 펄럭이면서 날씨는 비로소 금상첨화가 된다. 눈을 가리고 졸음을 청해도 햇빛의 온도와 바람의 촉감을 만끽하느라 잠에 빠질 새가 없다.
폴딩도어 너머 테라스의 회백색 벽 위로 조도 낮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늘에 떠있는 듯 보이는 항공장애표시구의 빨간 색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절묘해진 하모니를 발견한 듯 들떴다. 구름마저 거의 보이지 않는 맑은 하늘이 한몫 톡톡히 한 풍경이다.
김훈 작가의 책을 조금 음미했다. 꼭꼭 씹어 읽을수록 감칠맛이 산다. 오늘따라 문장을 가지고 노는 그의 여유로운 기교가 새삼 감탄스러웠다. 작가 소개에 쓰여있는 건 출생, 대표작, 그리고 '자전거 레이서'라는 진지하고도 위트 있는 설명.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언론인으로서도 본받고 싶은 그의 일생에 대한 자기 PR은 뭉티기로 빠졌다. 이것은 힙합인가.
이곳에 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파주 문학단지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오늘 안 가봤기에 모르는 노릇이긴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의 순간의 훨씬 근사하다. 여유로운 팝송이 수평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해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몸에 흡수되는 햇빛의 온도가 점점 뜨거워지지만 아무래도 좋다. 내가 사랑하는, 여름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