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아프지 않기 위함이 아닌, 아파도 나아가기 위해

완벽한 치유를 기다리다 멈춰버린 나에게

by 파란 점의 관찰자

나는 늘 안전한 방향으로 회귀하는 사람이었다. 모험보다는 안정을, 불확실한 기쁨보다는 확실한 현상 유지를 택했다.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그러다 보니 삶의 기준은 언제나 '상처받지 않는 것', '아프지 않은 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 내가 언젠가부터 조금 묘한 위로를 얻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동경하고 대단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의 '흔들림'을 목격했을 때였다.

화려한 성과 뒤에 감춰진 그들의 번아웃, 공황, 그리고 무너져 내리는 마음들, 처음엔 그런 모습을 보며 안도하는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남의 불행을 보며 나의 평범함을 합리화하는 건 아닐까? 내가 이렇게 얄팍한 사람이었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비열한 우월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이었다.

저토록 강해 보이는 거목(巨木)도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는 사실. 매일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매일 울고 싶음을 참으며 출근한다는 사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비로소 내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다.

"흔들리고 난 후에 아픔이 싫어서 피했나 보다."

내가 그토록 안전한 길만 고집했던 건, 단순히 겁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흔들린 뒤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그 쓰라린 통증, 그 아픔을 감당하기 싫어서 애초에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건강한 삶이란 '아프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지치면, 나는 나를 '고장 난 기계'취급했다. "빨리 고쳐야 해. 빨리 안 아픈 상태가 되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렇게 스스로를 안전한 방구석에 가두고, 완벽한 컨디션이 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내가 존경했던 그들은 달랐다. 그들은 아프지 않아서 나아간 게 아니었다. 그들은 아픔을 데리고 나아가고 있었다.

상처가 다 아물기를 기다리다간 영영 문밖을 나설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다리가 아프면 절뚝거리면서 걷고, 마음이 아프면 울면서 일을 했다. 그 모습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완벽함보다 '단단'해 보였다.

리로는 알고 있었다. 실패도 과정이고, 아픔도 성장이라고. 하지만 이제야 가슴으로 깨닫는다. 이 진실을 내 삶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나는 '회복'의 정의를 다시 쓴다. 회복이란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흉터를 훈장처럼 달고, 무릎이 좀 시큰거려도 다시 신발 끈을 묶는 태도다.

늘 안전한 곳으로만 핸들을 꺾던 겁 많은 나에게 말해준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불안해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그 불안을 없애는 게 아니라 불안을 옆자리에 태우고도 운전대를 놓지 않는 것이라고.

오늘도 나는 조금 흔들린다. 하지만 이제는 그 흔들림을 멈추려 애쓰는 대신, 흔들리는 채로 한 걸음을 내디뎌 본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배 위에 타고 있으니까 파도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대신,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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