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영원회귀', 코칭, 그리고 나의 구원
훈련이라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반복이다.
동작을 다시 하고, 흐름을 다시 읽고, 실패를 다시 마주한다.
이 반복은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무의미해 보인다. 그렇지만 니체의 '영원회귀'는 이 지루함을 전혀 다른 빛으로 비춘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 제341절에서 묻는다.
"지금의 삶을, 지금까지 살아온 이 삶을 그대로 다시 살아야 한다면... 너는 그것을 견딜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단호히 답하지 못한다.
내 삶의 대부분은 깊은 성찰의 자리보다, 삶의 겉만 맴돌며 버티며 떠밀려온 시간이 더 많다. 그래서 "지금의 삶을 그대로 다시 살아라"는 질문은 아직 조금 버겁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나는 이 삶을 살아서 좋다."
완벽해서가 아니다. 이 삶이 나를 지금의 자리까지 데려왔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더 빠르고 완벽한 성과를 요구한 적도 있다. 또한 더 나아지는 존재가 되라는 압박을 주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지루함을 견디고, 실패를 끌어안고, 반복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바람의 밑에는 내가 있다.
어린 시절 실패를 견디지 못했고, 지루한 과정에서 물러섰던 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실패 앞에서 주저앉던 그 오래된 나를, 조용히 구원하고 싶다. 그리고 그 구원이 누군가에게는 훈련의 과정, 지루함, 실수, 반복을 긍정하는 경험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삶의 반복을 기꺼이 긍정하는 인간이다. 고통과 지루함, 좌절과 성장 없는 순간까지 "이것이 다시 와도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
나는 그 지점에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성숙해진다면 니체가 다시 내게 묻는 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꺼이 살아낼 것이다.
수행은 고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