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멘트 Jul 06. 2019

비판적 생각에 대한 비판적 생각

# 지난 글, '정규직은 싫은데요'에 대한 반성

대학 때 나는 내 전공 교수님들보다 교양으로 들었던 철학 교수님들과 더 친했다. 서양 철학도 매력적이었지만, 중국 불교철학을 비롯한 동양철학은 정말이지 나를 깊게 매료시켰다. 학교를 자퇴하고 인도로 철학 공부를 하러 유학까지 갈려고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알아보기까지 했었으니 나는 정말로 진지했었다. 그러던 중 종교 관련 분야에서 꽤 권위 있고 유명한 사람이 나와서 그 사람 나름대로 종교를 해석하는 한 강의를 듣게 됐다. 너무나 명쾌한 해석과 반박하기 어려워 보이는 논리, 화려한 화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중에 친했던 교수님께도 그 강의에 대해 언급하며 내가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마치 그 사람이 강의해서 이야기 한 내용이 진리라도 되는 양 떠들어 댔다. 교수님은 가만히 듣더니 내게 딱 한 마디를 하셨다. 

'어떠한 생각이 내게 들어왔을 때 그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의 과정이 없이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그때 그 교수님의 한 마디가 점점 더 자주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이유는 아마 해가 갈수록 너무나 많은 정보들과 다른 생각들, 다양한 주장들과 의견들이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아주 가까이, 빠르고 쉽게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현상을 놓고도 서로 반대되는 의견들이 존재하고 또 그 둘 중 어느 쪽도 완전히 옳지도, 완전히 그르지도 않을 때 그 현상을 최대한 치우치지 않은 관점으로 관찰하고 분석해서 나만의 의견과 어떻게 해서 그 의견을 도출했는지에 대한 나만의 사고 과정이 부재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큰 내면의 혼란과 마주해야 할 수 있다.


나만의 사고 과정을 통해 나의 의견을 갖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또한, 나의 의견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인정이다. 내가 굳게 믿는 것은 스스로가 주관적인 판단을 통해 내린 결론이기에 우리와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다른 입장에서 비판은 할 수 있을지 언정 내가 선택한 '맞는 결정'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루저라거나 그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틀렸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사리사욕에 의한 이기적인 선택이나 반사회적인 행동 등은 해당하지 않으며, 순수하게 '다른 의견'에 대한 경우들에만 한정한다)


그래서, 내 이전 글인 '정규직은 싫은데요(https://brunch.co.kr/@thebluenile86/11)'에 대한 포스트에 대한 덧붙이는 글을 다시 쓰고 싶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을 '월급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쟁이'는 무엇을 낮춰 부를 때 쓰는 단어인데 단어 그대로 나는 사실 회사에서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한 선택을 내심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다고도 볼 수 있는 이 시대에서 회사에서 소모품처럼 일하는 기간은 마치 낭비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소모품으로 쓰인다고 보는 것은 당연히 부정적인 면만을 본 치우친 견해이며, 무엇보다도 본인의 독립과 자립을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묵묵히 오늘도 회사를 향해 현관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선택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으며 존중할 만하다. 우리는 그런 누군가의 책임감 있는 선택과 그 모든 세월을 견디었던 시간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무사히 있을 수 있는 것 일터이니.




말을 하는 것은 언제나 너무나 쉽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에 반해 균형 잡힌 사고의 과정은 순간적으로 밖으로 뱉어버리는 말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디고 큰 인내를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비판하는 것은 쉬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그에 비해 훨씬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발효된 음식이 깊은 맛을 내는 것처럼, 깊은 사고를 거친 의견은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처럼 가볍지 않고 시간과 고민으로 발효된 비판적 견해는 부드럽지만 단단하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와 다양성의 충돌이 난무하는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각자의 길을 찾으며 전진하는 여정에서 내 생각과 의견이 한층 더 깊고 무거울 수 있도록 입은 조금 더 닫고 머리와 마음은 조금 더 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타고니아에서 살아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