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멘트 Jul 08. 2019

집 값이 떨어지지 않는 나라

# 자산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선택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개인의 선호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었고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참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자본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잔인하게도 자본은 자본을 증식한다. 자본이 자본을 키우고 큰 자본은 작은 자본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는 이 자본주의의 특성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단순한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내 돈이 스스로 돈을 굴리는 시스템을 개인이 직접 만들지 않거나 아니면 북유럽의 부유한 국가들처럼 국가 자체에서 나의 노후연금을 충분하게 안정적으로 책임져 주지 않는 이상, 현재의 월급으로 죽을 때까지 산다는 가정은 '현실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현실적으로'라는 의미는, 월급으로도 굶어 죽지는 않을지 언정 이제 한 개인의 너무나 기본적인 욕구가 되어버린 생활의 많은 부분들, 예를 들면 작더라도 편안한 주거 공간, 주기적인 외식, 문화생활, 여행, 경조사비, 질병 등에 대비한 비상금 등의 영역까지는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꽤 오래전부터 재테크 붐이 일어났던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역설은 바로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는 데에 있으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월급 이외에 돈을 버는 방법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고, 부동산 투자는 종잣돈이 필요하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전부터 많은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마치 그것은 내 돈을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굴릴 수 있는 만능 해결책인 듯이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 (및 투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발전 과정과 정책들의 영향이 컸고, 초기 대기업과 재벌을 중심으로 시작된 도심 지역의 부동산 투자(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번져갔다. 경제에 대한 깊은 공부는 부재했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직접 보아 온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부동산의 불패 신화를 믿었고 그래서 '집값 안정'은 지금까지 어느 정부에게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 칠레에 와서 가장 나를 놀라게 했던 것 중에 하나는 화폐단위가 한 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처음 이 곳에서 월세 계약서를 쓰는데 등장한 화폐단위는 이 곳에서 매일 쓰는 칠레 페소가 아닌, UF(Unidad de Fomento)라는 새로운 단위로 적혀있었다. UF는 1967년 칠레의 4% 남짓 정도였던 경제 성장률과 30%가 훌쩍 넘는 물가 상승률이라는 두 경제 지표의 큰 갭에 대한 문제를 겪고 있을 당시 Eduardo Frei Montalva 정부가 내세운 해결책이었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가격의 실제 가치를 낮추기 때문에 가격을 인플레이션에 연동시켜 실제 가치를 지킨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UF는 물가상승률에 연동된 칠레의 기본 화폐단위인 Peso의 최종 가치다. 매년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 해당 국가의 국책은행이 목표로 하는 물가상승률이 있다. 우리나라는 2%, 칠레의 경우는 3%를 목표로 하는데, 이 말은 즉 디플레이션이나 심각한 경제 위기가 오지 않는 이상 UF는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UF에 연동된 PESO의 가격 변동 추이

이 화폐 단위는 부동산 같은 자산의 가격, 월세, 연금, 제 보험료, 학교 등록금 등 한 개인이 사용하는 비용 중 필수적이나 금액면에서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 들에 쓰이며 매일 변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월세를 내는 월세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지난달 월세보다 이번 달 월세가 높고 다음 달은 더 높은 월세를 내야 하는 구조가 되며 해당 부동산을 소유한 집주인 입장에서는 극심한 경제위기 같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집 가격 또한 물가 상승률에 연동해서 매년 상승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3,000UF였던 아파트의 가격이 2016년 같은 3,000UF 이었지만, 이를 실제 화폐인 페소로 환산했을 때는 1천5백만 페소(한화 약 2천5백만 원)가 상승했다. 물론, 은행 대출로 구매한 집의 경우에는 매월 은행에 내야 하는 월 상환금도 같이 오른다.  


UF는 시스템적으로 장단점이 명확히 있으나 개인적으로 UF 시스템에 대해 이 곳에서 살면서 피부로 느꼈던 것은 이것이 자본가들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월세는 UF에 따라서 오르지만 월급은 UF로 받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을 포함한 중산층까지는 UF가 자신의 자산을 더 빠르고 안전하게 불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일 수 있지만 아무런 자산 없이 월급으로만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칠레의 많은 서민들에게 UF는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저축의 의지를 꺾어버리기도 한다. 현재 칠레의 최저임금에 의한 월 급여는 약 한화로 50만 원 정도이며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의 수입이 최저임금에 준하거나 그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물가까지 높은 이 곳에서 기본적 생활비를 제외하고 저축을 해서 개인 자산을 보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아예 저축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은 장기적으로 볼 때 빈부격차를 더욱 극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자면, '집 값이 떨어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은 사실 자본주의 세상을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아예 성립하지 않는 명제일 것이다. 시장은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며 칠레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한다고 해도 한 나라의 경제는 너무나 많은 국제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자산 가격을 지키는 100% 완벽한 정책도 없다. 그러나 현재 칠레는 유래 없이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베네수엘라, 아이티, 페루 등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매일 칠레 이민청을 가득가득 매우고 있는데 더해서 갈수록 심해지는 도심 집중화에 의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건설붐으로 현재 칠레 대도시의 주택시장은 그야말로 뜨겁다. 물가가 상승하는 한 자산의 가격도 유지 혹은 상승하는 UF라는 화폐 시스템과 높은 이민자 유입률로 인해 자본가들은 앉아서 돈을 벌고 자본이 없는 서민들은 월급에 비해 점점 높아지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서민이 없을 때 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시대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떠나 장기적 관점에서 한 국가가 가야 할 언제나 옳은 길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선에서 선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속 가능하고 투명한 정책뿐 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판적 생각에 대한 비판적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