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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Apr 15. 2019

우리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

# 나이를 중요시하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알고 지낸 지 수년이 지난 친구들 중 아직도 그들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내가 먼저 굳이 그들의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고, 그들도 내게 굳이 본인들의 나이를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내게 언젠가 이야기를 해주었으나 기억에서 잊히고 난 뒤 다시 또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은 경우도 많다. 내게 그들은 나이 이외의 많은 다른 것들로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살고 있는 듯하다. 가령,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대학교를 가야 한다'라는 명제에 왜?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보다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입학이 늦어졌을 경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더 일반적이고, 마찬가지로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 최소 1년 내에는 첫 직장을 잡아야 한다'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많은 젊은이들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그런 명제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반영되었다기 보다도 이 사회의 구조가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부분이 크겠지만.




사회는 우리에게 이상적인 롤모델을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이 정도면 반 강요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묻는다. "스물다섯 살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너도 이젠 좋은 직장을 잡아야지. 서른인데 아직도 결혼할 사람 하나 없다고? 서른 다섯 정도면 이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경력단절되기 십상이야." 등등...



언젠가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내가 대학교를 그렇게 서둘러 갔는지 모르겠어. 그때는 정말 내가 뭘 공부하고 싶은지 조차 확실하지 않았는데.. 조금 더 이것저것 해보다가 학교를 가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대학교에 가서도 좀 더 깊고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었을 것 같아." 그러자 친구는 내게 20대에서 1년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런 생각을 하냐고, 그렇게 남들보다 뒤처진 20대의 1년은 생각보다 큰 시간이라고 했다. 사실 20대뿐만이 아니라 30대의 1년도, 40대의 1년도, 50대의 1년도, 우리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어느 계절에 서있던지 '나이'라는 숫자들의 경계에 집착하며 이 사회가 각각의 숫자에 지워놓은 무게감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나의 속도에 편안함을 느끼고,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는지이다.     


영화 Happy happy Bread의 한 장면

내가 지금 몇 살이라는 인식과, 이 정도의 나이에 다다른 수많은 타인들이 성취한 것들과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것들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느끼는 인생의 무게는 훨씬 가볍고 단순해질 수 있다. '이 나이 정도면 무엇을 해야 한다'에서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로의 인식 변화가 결국 장기전에서는 더 적합한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대할 때에도 저 사람이 몇 살이기 때문에 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겠다 혹은 대할 수 있다 라는 편협한 인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봐 주는 일일 것이다. 10대의 고민은 20대들의 고민과 다를 수는 있을지 언정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그들의 고민이 20대들의 고민보다 더 하찮다고 볼 수는 없고, 마찬가지로 20대의 고민이 더 이상 40대의 고민이 아니라고 해서 40대는 20대의 고민을 더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스무 살의 고민과 쉰 살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늘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마주한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같은 사람들이기에.


사실 살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고민들을 잘 살펴보면, 그것들은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나의 10대 때의 고민은 풀리지 않은 채 20대가 훌쩍 넘은 어느 날에 돌아보니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닌 게 돼버렸고, 20대에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고민들 또한 내가 해결하려는 노력은 했을지 언정 해결하지 못한 채 30대나 40대에 와서 슬그머니 없어지는데, 더 이상 그것은 내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게 되고 지금의 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들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다양한 친구가 필요하다.

내가 절대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들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을 때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와서 내게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해줄 수 있는 사람이나 혹은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훨씬 더 다양한 경험을 해서 내가 했던 고민들을 이미 한 사람들과 내가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다른 이들의 눈총을 받을 필요 없이 내게 편안하게 다가와 조언해줄 수 있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도 혹여나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라는 걱정할 필요 없이 그 사람의 충고 또한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면, 우리 모두는 어쩌면 각자의 고민으로 인한 오랜 고통의 시간을 단축하고 내게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까지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나이'가 내게 주었던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싶다. 경계가 사라진 곳에는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다.


만약 우리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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