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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Jul 12. 2019

남미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_여행 편

# 남미 여행을 위한 아주 대략적인 멘탈 세팅

지금까지 남미의 8개국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파라과이)을 돌아다녀보고, 이 중 두 개 나라에서 일정 기간 살아본 내게도 아직 남미는 '가이드'가 필요한 대륙이다. 넓은 대륙인만큼 가 볼만한 곳들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지만 너무나 변수도 많고, 점점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리버리한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관광을 하기에 그다지 편안하거나 친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이 머나먼 남미로 여행을 꼭 한 번 와보고 싶어 하는 것은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스케일의 자연, 페루의 마추픽추나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등이 주는 신비로운 느낌, 뭔가 항상 걱정 없이 즐겁게 살 것 같은 사람들, 그냥 한 마디로 우리와 너무나 다를 것 같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호기심이 그 이유이지 않을까. 요즘은 남미 여행 가이드 책이나 블로그 등에도 아주 자세히 잘 나와있고 무엇보다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여행 일정을 짜면서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만끽하는 것이니 만큼 자세한 일정에 대한 정보나 맛집, 숙소 등에 대한 정보는 일단 제쳐두고, 여기에서는 남미에서 일해보고, 살아보고, 여행해본 사람으로서 남미에 여행을 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마음의' 준비사항 및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간단히 공유해보고자 한다.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하는 경우는 크게 해당되지 않을 수 있음)

      



티티카카호 수위, 태양의 섬에서

1. 유명한 관광지가 좋은 여행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 멀리까지 가서 관광지를 가야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유명한 여행지를 그냥 스킵하고 오히려 내가 더 마음이 편하고 좋은 기분으로 오래 있을 수 있는 곳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은 여행이 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남미는 대기시간 빼고 비행시간으로만 거의 30시간에 육박하는 아주 아주 먼 곳이다. 비행기에서 영화 네 편을 보고 잠까지 한숨 푹 자고 일어났는데 반도 도착 못해 있을 때는 승무원에게 정말 '그냥 저 좀 잠깐 내려주세요'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쉽지 않은 비행이다. 여행 기간을 3개월 이상으로 충분히 여유 있게 잡고 온 것이 아니라면 어렵게 마련해서 온 소중한 시간을 여기에서 온갖 사람들에게 치이고, 남미의 안 좋은 부분만 잔뜩 겪다 보면 그냥 스트레스만 쌓일 수도 있다. 그래서 무작정 유명한 관광지들을 위주로 여행 일정을 짜기 보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어떤 것들에 민감하며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위주로 여행 일정을 짜기를 추천한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는 짧게라도 현지 사람들과의 교류를 갖는 것을 좋아한다. 꼭 말을 붙이거나 친구가 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현지인이 일상적으로 많이 가는 곳이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대도시도 좋지만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내 여행의 추억들은 늘 작은 골목길들을 중심으로 퍼져있다. 또한 숙소의 청결상태에 민감한 사람은 돈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깨끗하고 안전함이 보장된 숙소를 얻는 것을 추천한다. 남미의 위생 개념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차이가 크니까.


해가지는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2. 당신의 여행 계획은 '베스트 시나리오'일뿐이다

그리고 그리던 우유니 사막에 어렵게 도착했는데 공항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알고 보니 지역 휘발유값 인상에 반대하기 위해서 온 주민들이 파업을 한 것. 볼리비아는 일인당 GDP가 약 3,400달러로 (우리나라 29,000 달러) 남미에서도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이 나라에서 우유니 사막을 통한 관광수입은 작지 않기 때문에 택시 기사, 모든 가게들 등의 파업이 종종 있다. 그래도 하필이면, 내가 도착한 날 파업을 해서 나는 우유니까지 와서 우유니 사막을 못 볼 뻔했다. 한 참 후에 겨우 웃돈을 주고 차를 얻어 타서 소금 사막으로 출발했지만, 온 주민이 파업을 했던 만큼 아무도 몰래 사막까지 도착해야 했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한참을 달리는데 차 뒤로 한 무리의 주민들이 큰 돌덩이를 들고 와서 내가 타고 있던 차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정말 스릴러 영화 한 편 찍는 줄 알았다. 문제는 이런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하기도 어렵다는 것. 남미는 변수가 넘치는 곳이다. 일정을 짜는 것은 좋지만 처음부터 아예 이 일정의 50%만 큰 무리 없이 실행될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고 현지에서는 그냥 '그래,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인드로 초지일관하는 마인드셋이 중요하다.  


페루의 여자아이들


3. 간단한 스페인어 몇 문장은 당신의 여행을 훨~씬 편하게 한다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하던지 그 나라의 말을 아는 것은 물론 도움이 된다. 남미에서는 그 효과가 더 한 것 같다. 물론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않아도 여행이 가능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스페인어 몇 문장을 익혀가면 넓은 남미 대륙 어느 나라에 가도 통한다는 사실은 꽤 매력적이다.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들이며 브라질에서 쓰는 포르투갈어도 스페인어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브라질 사람들은 당신이 스페인어로 이야기해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이 정도면 남미 대륙 전체에서 스페인어는 정말 만능이라고 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얼마예요?', '~까지 어떻게 가요?' 그리고 1부터 10까지 숫자 등 정도만 비행기 안에서 연습해도 충분히 현지 사람들에게 말을 붙여보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결국 정말로 소중한 기억들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시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공부하고 있는 볼리비아 아이들

4.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한다  

  * 일요일과 해당 국가의 공휴일 확인은 필수!

칠레에서 처음 연말과 1월 1일을 맞았던 해였다. 큰 도시 전체가 '텅' 비어 버리는 아주 신기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장을 보러 나갔는데 열려있는 슈퍼마켓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음식점도 모두 문을 닫았고, 열려 있는 음식점이라고는 터키 음식점 한 군데와 중국 음식점 한 군데가 있었는데 두 곳다 예약이 꽉 차서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남미 국가들은 카톨릭을 국교로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이 많기 때문에 일요일이나 공휴일, 연말 등은 거의 모든 상업 시설들이 영업을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건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카페들은 거의 오후 6시나 늦어도 8시에는 문을 닫는 것이 일반적이고 어떤 가게들은 오후 4시까지 영업하는 등 영업시간이 정말 생뚱맞은 가게들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많은 공간들이 그렇게 늦게까지 열려있지 않으며 휴일에는 거의 예외 없이 모두 문을 닫기 때문에 도시 투어를 한다면, 휴일은 무조건 제외하는 것이 안전하다.

 

  ** 아날로그 감성(?)의 필요성

해외를 나가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는 정말 빠르고,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있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현금이 필요 없고, 종이 쪼가리들을 인쇄해서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이 휴대폰으로 접속 가능하고 휴대폰 화면 상의 데이터를 웬만한 모든 곳에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미는 아직 그 과도기 중이다. 불과 몇 달 전, 페루에서 비행기를 타야 해서 체크인을 했는데 휴대폰이나 이메일로 항공권을 받을 수 없었고 '인쇄하기' 버튼만 덩그러니 있었다. 따로 인쇄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나중에 공항에서 체크인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그 항공사 내에 전자항공권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고 나는 35달러 정도를 내고 인쇄를 해야 했다. 필자처럼 종이 한 장에 4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내고 싶지 않다면, 항상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 탑승권, 입장권, 여권 복사본 등에 더불어 현금도 늘 비상용으로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 필요하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곳도 꽤 있으며, 어느 나라에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식당들이 어떤 곳은 비자카드만 받고 마스터카드는 안 받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남미는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마구 튀어나오는 곳이다.


  *** 안전한 여행을 위한 팁

다들 남미는 위험하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여기도 다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너무 불필요할 정도로 위축돼서 겁을 먹고 다니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숙지하고 조금 마음을 열고 다니는 것이 좋다는 것이 개인적 의견이다.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첫 번째, 중요한 소지품은 가방이 아닌, 내 몸에 소지한다. 그렇다고 뭐 양말이나 속옷 속에 현금을 분산해서 넣고 다니고 그럴 필요 까진 없지만, 안 주머니가 있는 겉옷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 안에 휴대폰이나 현금을 넣고 다니면 안전하고, 나 같은 경우는 지갑 자체를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그냥 필요한 교통카드, 현금카드, 소량의 현금만 빼서 잘 빠지지 않는 바지 주머니나 지퍼가 있는 겉옷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가방에 그런 것들을 넣고 다니는 것은 조금 위험한 것이, 배낭은 뒤에서 슬쩍 열거나 아니면 칼로 바닥을 찢어서 물건을 빼 갈 위험이 있으며, 핸드백 종류는 채서 달아다니가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대낮의 중심가에서는 흉기로 사람을 위협하는 강력 범죄보다는 좀도둑을 만날 확률이 훨씬 높다. 나 같은 경우는 고속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배낭을 내 자리 바로 위 짐칸에 잠깐 올려놓았는데 (중간에 서는 곳이 없으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릴 때 알았다. 가방이 통째로 없어졌다는 것을.. 그러니, 중요한 것은 늘 내 몸에서 떨어질 일이 없는 곳에 소지하는 것이 안전하다.


  두 번째, 위험한 곳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적이 드문 곳은 모두 위험하다. 여행객들이 작정하지 않고서야 위험한 곳을 일부러 갈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치안이 안 좋은 곳은 거의 대부분 관광할 거리나 볼거리도 없고, 그냥 삭막한 분위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사람이 드문 길은 있다. 나는 '동양인 + 여자 + 혼자'라는 최악의 조합으로 여행할 때는, 무조건 낮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다니고 가급적 허름하게(?) 다닌다. 사람이 없으면, 어떤 곳이든 위험은 늘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밝은 곳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곳으로 다니면 치안에 대해서 너무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세 번째,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도움을 요청하거나 받지 않는다. 여행을 하다가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때나, 무언가를 물어볼 때 내가 찾는 부류는 일단 현지인 커플들(커플은 대부분 친절하다), 아니면 나와 같이 관광 중인 외국인들이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내 휴대폰을 갖고 그 길로 도망쳐버릴 수 있고, 강도 몇 명이 그룹을 만들어 어떤 사람이 마주오며 부딪혀서 내게 음료수를 쏟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옷을 말려준다고 하며 야단법석을 떠는 사이 일행 중 한 명이 내 가방을 채어 간다거나 하는 수법은 이미 전통적인 방법이 되어버렸다. 또한 이 곳에서 많은 여자들은 홈 파티나, 클럽에 갈 때 자기가 마실 술을 따로 핸드백에 넣어서 간다. 이번에 논란이 된 버닝썬 사태처럼 술에 약을 타고 범죄를 저지르는 방법은 이 곳에선 예전부터 다들 익히 알고 있고 그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미리 조심하는 것이다.   


칠레, Torres del Paine에서

5. 유용한 아이템 추천

미리 준비하면 좋을 여행 추천 아이템은 다음과 같다.

- 허리에 차는 작은 가방 (내 시야 안에 들어오는 가방이 가장 안전)

- 안 주머니에 지퍼가 달린 방수 재킷 혹은 바람막이 (마찬가지로 중요한 소지품을 넣고 활동하기 용이)

- 가벼우면서 방수가 되는 운동화 (방수가 되면서도 잘 미끄러지지 않는 운동화는 필수)

- 매일 입어도 지겹지 않은 기본 아이템 (검은색 바지, 티셔츠, 흰 티 등등 기본 템이 가장 유용)

- 전자책 (인터넷도 안되고 무언가를 기다릴 때 전자책은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게 해 줌)


마지막으로, 남미 내에서 비행기와 버스 중 어떻게 이동을 할 것이냐에 대한 것에 대한 결정 또한 간단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비행기 편이 여의치 않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버스가 어떤 경우엔 매일 운행하지도 않고 화, 목, 토요일 이렇게만 운행하거나, 하루에 딱 1번이나 2번밖에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통 칠레와 아르헨티나, 페루와 볼리비아처럼 국경을 마주한 나라 사이는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편할 수도 있다. 버스 편 구글에서 영어나 스페인어로 찾아보되, 칠레 내 혹은 칠레-아르헨티나 사이 이동 버스는 recorrido.cl라는 사이트에서 각 버스회사의 가격비교를 해줘서 사용하기 편하다.




남미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여유와 위안, 그리고 자유를 줄 수 있기를..

세상은 넓고 다양하니, 너는 네가 가장 빛나는 자리로 가면 될 뿐, 네가 못난 사람이 아니라는 그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당신에게도 전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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