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멘트 Jul 12. 2019

남미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_취업/사업 편

# 기회의 땅 남미에서 기회를 찾으려면

남미는 되는 것도, 그렇다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쓸데없이 복잡한 행정 절차나, 아니면 반대로 오히려 너무 당연한 절차가 없는 경우도 있고, 도대체 아무것도 아닌 일도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여기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규칙을 찾아 살아간다. 그리고 아무리 답답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도 그것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곳에서 취업을 하거나 사업을 할 기회를 찾고 있다면, 이 곳 사람들의 대략적인 사고방식이나, 이 곳의 문화, 경제, 사회, 역사를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앞으로 이 곳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대략적인 방향 설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미 사람들과 지금까지 일을 함께 해보면서 느꼈던 점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뭐가 있을까.




에콰도르에서

1. 남미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엄청난 크기의 드릴로 땅을 직선으로 뚫어 지구 반대편으로 나온다면 어디로 나올까?

맞다, 남미다. (아르헨티나 혹은 우루과이쯤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남미는 정말로 지구 반대편에 있다. 너무 멀다 보니 서로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여기에서 아무리 한국사람이라고 설명해도 일본 이민자가 많은 브라질에서는 나를 그냥 일본 사람 비슷한 사람쯤으로 알았었고, 상대적으로 중국인이 많은 칠레에서는 나를 또 그냥 중국인이려니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너무나도' 다른 나라들이니까. 마찬가지로, 남미를 그냥 통틀어 비슷한 국가들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물론, 한 중 일이 어느 정도 비슷한 동양권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처럼 남미 국가들도 서로 주고받은 영향들이 있고 더군다나 다 같은 스페인어를 사용함으로써 서로에게 느끼는 동질감은 있으나, 각 국가들은 저마다 고유한 문화와 언어 습관과 역사를 갖고 있어서 사용하는 단어나 억양, 표현들도 각 국가마다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 남미에 위치한 국가들을 그냥 퉁쳐서 '비슷하겠거니'라는 생각으로 현지인을 대하는 것은 아주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에게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 혹은 베트남 사람이라고 하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듯, 남미 국가들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들이 많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민감한 문제는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


2. 인내심을 가진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처음 칠레에 와서 은행 계좌를 여는데 7개월이 걸렸고, 비자를 받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비자 신청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다른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 아니다. 필요한 서류를 모두 내고 제시간에 맞춰서 모든 것을 진행했는데도 1년이 넘어서야 비자가 나오는 곳이 이 곳 남미다.(칠레는 남미 국가 중에서도 선진국에 속하는데도 이 정도이니, 다른 국가들은 상상에 맡기겠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라는 미스터리가 남는데..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것으로 유추해보자면, 일단은 모든 시스템의 디지털화가 전 프로세스에 걸쳐서 촘촘하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크고, 많은 사람들이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는 것도 크다. 현지 은행에서 일했던 친구가 예전에 은행 직원들의 일상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가관이다. 오전에 출근해서 한 시간 반 동안 동료들과 커피 마시며 수다 떨고, 자리로 돌아가서 한 시간 동안 잠깐 일하다가 다시 한 시간 동안 회의한다고 자리를 비우고, 점심은 두세 시간 동안 먹고 돌아와서 한두 시간 잠깐 또 일하다가 다시 커피 마시러 나갔다 오면 퇴근시간이라는 것... 물론 과장된 묘사겠지만, 사회주의 정권 경험이 있었던 많은 나라들이 노동자들 위주로 만들어진 강력한 노동법 때문에 근무 태만이나 병가 남용 등의 사유로 피고용인을 해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효율의 끝을 달리는 노동자도 흔하다 보니 어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수들,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혹여 당신의 일이 남미 회사들과 한국 회사 사이에서 중간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식의 일이라면, 항상 1주~2주의 여유를 두고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조금 안전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15일까지 요청한 무언가가 있다면, 남미 현지 회사에는 1일까지 달라고 해서 받는 식이다. 1일까지로 요청해 놓은 서류는 매일 '내일까지 보내줄게'라고 이야기하며 보통 10일에서 15일 사이에 받을 수 있을 터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느려도 될 일은 다 된다는 편안한 마음 가짐으로 현지인들 앞에서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화를 내버리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사람이 한 번 얼굴을 붉히고 나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수십 배, 수백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이런 빈 틈과 개선할 부분들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이기에 똑똑하고 빠른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빈 틈이 있는 것이 아닐까.  

페루 시골 마을을 지나며

3.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현지에서 본인이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Te lo envío mañana en la mañana.´, 즉 '내일 아침까지 보내줄게.'라는 말이다. 급해 죽겠는데 너무 여유롭게 농담까지 던지면서 이야기하니, 웃는 사람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도 초기에는 '그래 내일까지는 꼭 보내줘.'라고 하고 말아 버렸는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렇게 좋은 것이 좋은 거지 라는 태도로는 일 진행이 정말 더디고 어렵다. 안 되는 일에 붙는 변명은 수십 가지다. 가장 흔한 변명은 '시스템이 다운됐어요.' 그리고 '나는 다 처리했는데 다른 담당자 선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등이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대부분 다 변명이다. 이럴 때 문제 해결의 가장 빠른 방법은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해당 담당자 위 상사에게 바로 연락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을 쓸 때는 담당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메일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압박을 했다고 해도 일이 확실하게 매듭을 짓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절대로 아니다. 변수는 끊임없이 튀어나오며, 같은 업체나 기관에서도 담당자들 마다 하는 말이 다른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본인이 필요한 모든 것이 정확하게 확인이 되고, 계약서 같은 중요한 서류가 내 손안에 들어오고, 돈이 걸린 문제라면, 내 통장에 돈이 찍히기 전까지는 절대로 끝난 것이 아니다. '내일 보내줄게요.', '그거 계약할게요.', '거의 다 됐어요.'등의 말은 그저 '말'일 뿐, 일어나지 않은 사실은 아직 사실이 아니라는 것만 인지하고 있어도 이 곳에서 일을 하며 겪는 시행착오나 실수는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 현지인들과의 끈끈한 관계는 당신을 survive를 넘어서 thrive에 이르게 한다

솔직히 귀찮고 편하지 않다. 한국말이 편한 우리에게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흥미롭긴 해도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고 딱히 공통 주제를 찾기도 쉽지 않아서 한국 사람은 결국은 그냥 한국 사람끼리 모이는 것이 많은 경우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한 사람의 개인사에는 전혀 관여하지 못하는데, 중국에 '꽌시(관계)'문화가 있다면, 남미에는 '아미고(친구)' 문화가 있을 정도로 내가 '아는 사람'의 힘은 정말로 정말로 중요하다. 내가 필요한 것을 쟁취하기 위해 부당하게 인맥을 이용하라는 노골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현지 사람들과의 끈끈하고 인간적인 관계는 해외 생활을 하는 당신에게 정서적으로 큰 위안과 안정을 주기도 하며, 당신이 아무리 잘났어도 외국인은 예외 없이 언젠가는 반드시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외국에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다 공감할 것이다.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외국인인 본인이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호기심을 내비치며, 그 사람의 생각과 말을 통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엿보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외도 많아서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감사하게도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남미 사람들은 순수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이 참 많았다. 본인들이 한 번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한 애정을 표하는 애정파, 의리파 들이니 우리가 먼저 다가간다면 분명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현지 사람들과의 그런 끈끈한 인간적인 관계가 당신의 해외 생활을 survive(겨우 살아남는 것)에서 thrive(번영하는 것)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친한 친구 조카의 성대한(?) 돌잔치


5. 진심의 힘은 세다  

마지막은 남미뿐만 아니라 만국 공통으로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 국경, 나이, 문화, 언어,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위대한 힘은 상대를 향한 선의의 '진심'이라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강하게 느낀다. 타인은 내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화를 내면 상대도 나를 따라 내게 화를 내고, 반대로 상대가 활짝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이야기를 하면 나도 얼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녹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남미보다 더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발전했다고 해서 이 곳 사람들을 낮춰서 생각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은 굳이 말로 내뱉지 않아도 그 마음이 크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밖으로 새어 나온다. 우리가 우리나라에 태어나는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듯, 이 사람들도 이 곳에서 태어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너보다 더 낫다는 마음이 아닌, 나와 당신은 다르지만 당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마음가짐이 이 곳에서 훨씬 더 바람직하다. 나는 진심의 힘을 믿는다.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으로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남미든, 유럽이든, 아프리카든 상관없이 당신은 당신의 길을 찾아 나갈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좋은 이들이 함께 할 것이라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미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_여행 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