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난 날

부재가 상기시켜 주는 것들에 대하여

by 모멘트

길었던 어제의 피곤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채 잔뜩 잠에 취해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는데 오늘 새벽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쩐지... 그렇게 피곤했는데도 밤새 두 시간마다 깼던 이유가 있었던 거야. 어쩌면 내가 새벽에 깨어 몸을 뒤척일 때 그녀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내몰아 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 한구석에서 형용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마구 소용돌이친다. 휴대폰을 다시 고이 접어두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비비고 하품을 힘껏 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여 일어났더니 창밖에는 안개가 자욱한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고 창문을 살짝 여니 살을 에는 눅눅한 추위가 살갗을 훅-하고 파고 들어와 '하필, 이런 추운 날에..'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금 착잡해졌다.


그녀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 했던 건 아니었다. 부쩍 몸이 안 좋아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며칠 전 우연히(!)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었다. 아마 그녀가 떠나기 일주일 전쯤이었을까. 목소리의 톤이 매우 불규칙했고 말을 하는 게 힘겨워 보였다. 그냥 감기 기운이 심한가 보다하고 빨리 나으세요 라며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한 것이 결국 내가 그녀와 나눈 마지막 인사가 되어버렸다.


왜 굳이 그 멀리까지 간다고 했을까. 그녀는 본인이 평생 살아왔던 도시를 떠나서 노년의 삶을 한적한 바닷가의 낯선 동네에서 보내겠다고 했다. 자식들은 다 뜯어말렸다. 그래서였을까. 자식들은 처음엔 2달에 한 번씩, 그러다가는 6개월에 한 번씩, 나중에는 1년에 한 번 정도 가서 하루 이틀 북적거리고 오는 게 다였다. 그렇게 잠깐이라도 그 작은 집에 삼대가 북적거리고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가나 가면 그 자리에는 다시 외로움과 고독이 남았다. 기억은 흐려져갔어도 속으로 흘렀던 감정의 선은 어째 더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일들이 자꾸 고개를 들어서 그녀를 괴롭히는 반면에 당장 조금 전에 약을 먹었는지 같은 간단한 것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이제는 끝이 다가오는 것만 같아 주변 사람들한테, 특히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그녀는 '나는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라는 식의 말을 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왜 그런 부정적인 말을 하며 오히려 성을 냈다.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더 직설적인 단어와 짜증 섞인 말투로, 거침없이. 그들의 진심은 저 너머에 있음을 알면서도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골골 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예상을 수차례 했다고 해도 진짜 끝은 언제나 황망한 법. 그리고 그 황망함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남은 자들의 몫이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딱 하나밖에 없는 성당 본당의 뒤뜰 쪽으로 이어진 작은 공간이 마련되었다. 동네 사람들과 가족, 친척들이 기도를 한다는 명목으로 슬픈 감정에 휩싸여 모이긴 했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각자의 세계 속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갔다. 휴대폰 속의 소셜네트워크 세상으로,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남겨둔 일거리로, 오랜만에 만난 타인과의 근황을 빠르게 업데이트하며 웃음꽃이 피기도 했고 혹은 최근 자신에게 더 직접적으로 일어난 그 사람의 죽음 속으로, 그래서 때로 그곳에는 친자식들보다 더 서럽게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생 철저한 가부장적 관념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남편도 끝내 꺼이꺼이 통곡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회한의 골자는 '그동안 본인이 느꼈던 감정들을 한 번도 제대로 진지하게 표현하지 못했음'에 대한 회한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떠나고 사람들은 그녀가 각자의 삶에서 차지했던 부분만큼 슬퍼했고 그렇기에 그 슬픔과 후회 또한 매우 개인적인 어떤 것이었다. 세상을 떠난 자는 아마도 생전에 들어보지 못했을, 남아있는 자들의 애정 어린 고백의 향연이 작은 공간 속에서 이어졌다.

병원을 갈 때를 제외하고 그녀의 생활 반경은 오래돼 휘어져 버린 그녀의 낡은 침대에서 거실 소파까지의 대여섯 발자국이 전부였는데 그런 그녀의 관을 실을 흰색 삐까번쩍한 리무진이 그새 성당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그날에는 차가운 비가 어둡게 쏟아졌지만 그녀가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그날은 다행히도 화창하다 못해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엄마의 자궁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딱 그 시간 정도가 걸렸을까, 그녀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 그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짧아서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허무함을 상기시켰고 짧은 이별의 순간을 뒤로하고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날처럼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 사이 벌써 일상은 늘 그래왔듯 습관적으로 반복되고 마치 우리에게 끝이란 건 없는 것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하루를 부지런하게 살아낸다. 다시금 우리가 오롯이 소유한 것은 현재라는 시간밖에 없음을 망각한 채로, 급한 일만 해치우다가 중요한 일은 끝끝내 손을 대지 못한 채로, 상대에 대한 진심을 표현하는 것은 언제까지고 뒤로 미뤄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