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멘트 Mar 05. 2023

매우 아날로그적 인간의
AI에 대한 생각

AI와 공생시대에 앞서해보는 몇 가지 질문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4:1로 승리해서 전국이 떠들썩했던 때가 2016년이었으니 벌써 햇수로만 무려 7년이 지난 일이다. 신기한 세상이 왔구나 했지만 그때만 해도 인공지능은 구글이나 아마존같이 세계적인 빅테크회사들의 영역일 뿐, 나같이 스마트폰을 메신저와 유튜브 재생용으로만 쓰는 신기술과는 거리가 먼 아날로그적 인간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최근의 ChatGPT의 열풍이 아니더라도 며칠 전 내가 매일 쓰는 일정 정리 및 노트용 프로그램에도 AI기능이 생겼길래 시키는 대로 한번 따라 해봤다. 

 

예를 들어 내가 책을 출판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Publishing a book'이라고만 쓰고 엔터를 누르자 AI가 단 몇 초 만에 책 출판에 대한 아래와 같은 리스트를 뚝딱 만들어냈다.  

Notion의 AI기능

책출판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도 이 리스트를 보니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일단 책을 쓰고, 출판에이전트를 찾고, 출판사에 내가 쓴 책을 보내고, 계약서를 쓰고, 내용을 편집하고, 디자인과 구성을 만들고 등등 아주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차근차근 진행해야 할 목록들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내가 새로운 영감을 얻거나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인간적인 느낌은 1도 없었지만, 하루아침에 사이버 개인비서가 생긴 기분이었다. 


최근 예술계에서도 AI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뛰어난 표현력과 매력적인 그림체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캐나다의 한 일러스트레이터 Sam은 'Sam does arts'라는 이름을 통해 온라인에서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데, 몇몇 대중들이 그가 인스타그램 등에 업로드한 그의 그림으로 AI를 훈련시켜 거의 완벽하게 'Sam 스타일의 그림'을 구현하고 있다. 


아래 그림 중 2개는 AI가 그린 그림이고 나머지는 모두 일러스트레이터 Sam의 작품이다. 어떤 작품이 AI가 그린 것인지 골라낼 수 있겠는가? 

(Reddit, @Sandro-Halpo)

모든 것이 AI를 통해 대체되어도 창작의 영역만큼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저작권이나 윤리적인 부분을 잠시 제쳐두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훈련된 AI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봤다. NovelAI라는 인공지능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에서는 Stable Diffusion이라는 오픈소스로 운영되는 이미지 형성 인공지능 모델을 제공하는데, NovelAI가 제공하는 이미지형성 인공지능은 특히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이미지에 특화되어 있다. 다시 말해 내가 테스트해 본 해당 인공지능 모델은 수많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고 학습해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이미지는 꽤 잘 만들어내지만 예를 들어 사진 같이 세밀한 풍경화 같은 이미지구현에는 취약하다. 


아래는 내가 구현하려는 이미지의 핵심 구성 텍스트를 넣었을 때 Novel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이다. 가장 첫 번째 그림은 '명화', '고퀄리티', '디테일한 눈', '영화적인 조명', '소녀 한 명', '흰 드레스' 등의 키워드를 넣어서 나온 이미지인데 크게 어색한 부분 없이 꽤 괜찮았다. 그다음 이미지는 그냥 한 카페에서 커피와 크로아상을 먹고 있는 한 아시안 여성의 이미지를 구현해 달라고 했더니 나온 그림인데 자세히 보면 무릎 부분과 손이 영 어색하다. 그리고 세 번째 그림은 여전히 커피와 크로아상, 카페 등의 키워드는 유지한 채 창밖을 보는 이미지를 주문한 결과다.


마지막 세 가지의 이미지도 마찬가지로 숲 속에서 기타를 치는 여자의 모습에 대한 키워드를 넣었더니 2초 만에 그림이 만들어졌고, 앉아있는 모습 말고 서서 기타를 치는 여자의 모습과 동물들을 넣어달라고 했더니 그리긴 그렸는데 기타 목 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그래서 정교함 옵션을 살짝 조정했더니 기타는 조금 나아졌지만 애니메이션 인물 위주로 트레이닝이 된 인공지능 모델이라서 그런지 동물들은 여전히 외계생명체 같다. 그래도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전혀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정도면 꽤 훌륭하다. 

무엇보다, '숲 속을 배경으로 배 위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커플'같은, 아무리 검색을 해도 인터넷에서는 찾기 힘든 조합의 이미지까지도 AI는 몇 초 만에 만들어낸다. (물론 완성도는 떨어질지언정) 

이를 감히 기술의 혁명, 혹은 기술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Sam does Arts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Sam을 비롯한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주장하는 바는, AI 트레이닝을 위해 원작 데이터를 마음대로 가져다 쓰고, 이를 통해 본인의 작품과 동일한 작품을 마구 생산해 이를 통해 수익창출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그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 자체가 AI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기술인지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조금 구차하긴 하지만 한 예를 들면, Sam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홍길동라는 사람이 Sam의 그림체와 매우 매우 유사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해보자. 홍길동은 본인의 그림 수백 장을 AI에게 주입해서 학습하게 하고 AI는 학습한 대로 홍길동의 그림스타일로 이미지를 생산해 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Sam의 스타일과도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Sam은 이것이 위법이라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어떠한 '스타일'에 우리는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스타일이라는 저작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고, 모던락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대해서도 우리는 특정인에게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듯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이전의 어떤 것을 모방하고 변경해서 새로운 가지를 쳐낸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현대의 많은 음악도 과거 고전 클래식의 멜로디를 각색하고 살짝 변형해서 변주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우리는 그런 음악들을 거리낌 없이 소비한다.   


AI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는다. 다만 '학습'한다. 어떻게 보면 매우 수학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는 것을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패턴을 학습해서 내가 학습한 것을 토대로 그때마다 가장 그럴싸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을 100만 권을 읽었더니 아주 많은 경우에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이 물었다.'라는 식의 문장 뒤에는 거의 높은 확률로 '질문 있는 사람?'이라는 식의 내용이 나온다는 것을 익힌 것이다. 수많은 문장과 단어에서 이러한 패턴을 발견하고 적용하다 보니 비슷한 원리로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꽤 고차원적 질문에 그럴싸한 대답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쯤 되니 조금은 혼란스럽다. 어떤 게 맞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존 우리가 갖고 있었던 기준과 새로운 세상의 변화에 대해 우리는 다시 명확하게 생각을 정리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이 우리가 원하던 그렇지 않든 간에 이미 시작된 AI와의 공생시대에 우리가 AI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소설가가 새로운 신작을 발표했는데 알고 보니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는 AI가 쓴 소설이라면? 이 소설의 모든 판매액은 이 소설가의 소유로 봐야 하는가? 1초 만에 '당연히 소설가의 수익이 맞다'라고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면 다른 예로, 아주 극소수의 유명한 웹툰작가를 제외하고는 불안정한 수입과 만성적인 과로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웹툰작가들이 본인의 그림을 대량으로 AI에게 학습하게 한 뒤, AI를 통해 조금 더 편하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위의 소설가의 가정보다는 조금 더 쉽게 납득할 만 한가? 

Sam 같은 개인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그림으로 AI를 훈련시키는 것은 저작권법에 위반되고 디즈니 만화시리즈나 고전명화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위반되지 않는가? 

반대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완성한 본인만의 그림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들의 그림을 학습한 AI가 하루아침에 마치 그들이 그린 그림 같은 그럴싸한 그림들을 몇 초 만에 10장씩 그려낸다면? 이는 정당한 것인가? 

아니면 AI가 누군가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면 그것이 부당하고, 그냥 내가 혼자 방에서 보고 덮어둔다면 그것은 괜찮은 것인가?

이제는 Sam이 지금까지 그려온 수많은 그림으로 이미 학습이 충분히 된 AI가 언제든 같은 스타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으니, Sam은 아티스트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 그것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음악과 동영상까지 뚝딱 만들어내는 AI에 밀려서 이제 인간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걸까?      


나는 그건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AI의 잠재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지라도, AI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이용해야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도구를 어떻게 훈련시켜서 어떤 일에 이용할 것인지는 많은 부분이 인간에게 달려있다. 이를 악용할지, 아니면 지금까지 먹고살기 위해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으로 보내야 했던 가련한 인류에게 불필요한 일은 최소화시키고, 각자에게 의미 있는 일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도록 시간의 자유라는 선물로 쓸지는 많은 부분이 우리의 질문과 대답에 달려있는 듯하다. 


또한 우리가 무심코 생각했던 당연한 것들에도 질문을 던져봐야 하겠다. 이를테면, 인공지능이 창작자의 생계를 위협하기 때문에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무조건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왜 인공지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창작을 해야 하는지, 인공지능이 창작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활동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새로운 플랫폼과 어떤 시장에서 어떤 윤리의식이 필요한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인공지능의 발전과는 관계없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항상 인간적인 유대감과 인간적인 생각들에 본능적으로 이끌릴 테니까. 그리고 제대로만 사용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은 이런 우리의 생각들을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텍스트화 혹은 이미지화하는데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이 의도한 재앙들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