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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Mar 17. 2023

네가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

너와 나는 연결되어 있어. 

페루 리마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다. 

공항을 나오며 보이는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벽돌 건물들과 정치인들의 공허한 선거 구호들은 1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노후자동차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2023년 현재에도 과거 우리나라의 대우자동차 초기 모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이러한 노후 자동차들이 쉼 없이 내뿜는 매연에 보통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렵다. 심각한 매연이 뜨겁고 습도 높은 끈적한 공기와 뒤섞여 쉴 새 없이 피부에 붙어 쩍쩍 달라붙는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 대부분은 창문을 활짝 열고 에어컨을 켜지 않는데, 그렇게 사람들은 본인의 폐를 희생시킨 대가로 약간의 기름값을 아낀다. 젊은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좋은 일자리도 드물어서 내 또래의 많은 청년들은 생계형 우버 기사가 되었고, 하루 종일 매캐한 매연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그들의 얼굴은 피곤한 일상에 찌들어있다. 

페루의 길거리 B-boy들.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팔꿈치와 무릎에 헝겊을 덧대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누빈다.
리마의 한 풍경, 뒤쪽의 사무실 건물과 그 아래 벽돌건물들의 격차가 너무나 극명하다.  
2023년 리마 내 한 산업단지 내 심란한 길거리 풍경

감을 조금 잡기 위해 숫자를 간단히 살펴보자면 IMF의 올해 가장 최근 데이터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USD 34,770불인데 비해 페루의 1인당 GDP는 USD 7,350이다. 1991년 우리나라 1인당 GDP가 USD 7,640불이었다고 하니 물론 명목적인 숫자로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절대 아니지만 내가 지금 와있는 페루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의 약 30년 전이라고 대략적으로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한국과 페루의 1인당 GDP 차이
세계 1인당 GDP Map. 청록색에 가까울수록 더 높고 붉은색에 가까울수록 더 낮다. (출처: www.imf.org)


업무의 특성상 내게는 이 나라의 사람들이 무엇을 즐겨 먹고, 어떤 맛을 찾는지 등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하는 게 중요한 일 중 하나인데 어째 알면 알수록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선택의 기준이 이곳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가성비를 꽤나 따지는 우리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품질 대비 좋은 가격이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아무리 매력적인 가격이라도 한번 쓰면 다시는 쓸 수 없어지는 싸구려 물건이나 내 몸에 해롭기만 한 음식 같은 경우에는 그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 최저임금이 1,025 솔 (약 36만 원), 리마 같은 대도시 평균임금도 1,650 솔 (약 58만 원) 정도인 페루의 일반 서민들에게는 어쩐지 가성비를 따지는 것도 버거워 보인다. 저렴한 가격은 필수조건이다 보니 그들이 찾는 맛은 더 강하고, 짜고, 중독적이다. 보통 몸에 좋지 않고 온갖 첨가물과 화학약품이 가득한 가공품일수록 대량생산 및 제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격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바꿔 말하면,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무언가를 만들려면 천연 재료를 최소화시키고 값싼 인공재료를 써야 하고 그런 맛이 그들에게는 '익숙한 맛' 즉, 그들의 식문화로 자리 잡힌 것이다. 


페루의 자부심

가난은 그래서 단순히 비싸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 못 가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한 사람의 신체를 형성하는 음식의 질과 이와 직결된 한 사람의 건강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현대사회처럼 거의 모든 것들이 공장에서 일정한 가격을 붙이고 시장에 나오는 곳에서 버터와 천연설탕을 사용한 통곡물 유기농빵옆 마가린과 사카린을 사용한 정제 밀가루빵은 이 세상 대부분 사람들에게 어지간해서는 피하고 싶은 옵션일지언정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유기농빵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월등히 많다. 


그런데 이것이 그저 개인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친환경소재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출발할 때마다 시커먼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오래된 자동차를 폐차시키고 싶어도 차를 바꿀만한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미세먼지와 공기오염은 계속될 것이고쓰레기나 오염수 등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자본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온갖 오물들을 집에서 가까운 바다나 강에 쏟아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아무리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도 다른 이들이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은 결국 물과 토지를 오염시켜 나에게까지 도달할 것이고, 내가 아무리 수소차를 타고 다닌 들 내 이웃이 30년 된 노후자동차를 처분할 수 있는 여력이 없으면 그 매연은 내가 마시는 공기가 되며, 내가 아무리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옆동네에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그들이 버린 오물은 내 동네까지 흘러들어 올 것이 뻔하다. 


이 바다 너머 저편에는 한국이 있다.

페루에 며칠 있으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지구에서 동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줄 알았던 당신이 내뿜은 매연이 나를 숨 막히게 하고, 내가 지금 버린 쓰레기는 당장이 아니더라도 세월이 흘러 어쩌면 당신의 자식이 살고 있는 집 앞 개울가에 둥둥 떠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그들의 안녕을 빌었다. 

그들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조금 나은 선택을 있는 삶의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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