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멘트 Feb 20. 2023

인간이 의도한 재앙들에 대하여

서울 면적의 3분의 2가 모두 타버렸다

이번 여름을 꽤나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창문너머로 일 년 내내 보이던 만년설을 뒤집어쓴 거대한 안데스 산맥은 사라지고 요 며칠간은 정말 가까운 건물도 겨우 보일 정도로 공기가 안 좋았다. 세계 도시별 대기오염 수치를 보여주는 한 웹사이트에서는 청정자연의 파타고니아를 품고 있는 이곳의 공기가 인도의 뭄바이와 방글라데시 다카, 중국의 베이징 같은 도시 다음으로 공기가 가장 안 좋은 곳으로 랭킹에 올랐는데, 이 공기의 주요 원인은 올여름 전국에서 타오르고 있는 수백 개가 넘는 산불들이었다. 30도가 훌쩍 넘는 이 한여름 더위에 문을 닫으면 더워서 숨을 쉬지 못하겠고, 문을 열면 공기가 너무 좋지 않아서 숨을 쉬지 못하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들이 며칠씩이나 지난하게 이어졌다. 


같은 공간, 다른 공기.

칠레는 사막부터 빙하까지, 열대기후만 빼고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기후가 존재하는 독특한 나라다. 그래서 칠레의 기후를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대부분 건조하고, 거기에다 여름에는 기온도 높게 오르는데, 올해 여름 한 중남부지역은 기온이 43도까지도 올랐다. 높은 기온에 건조하기까지 하니 불이 잘 옮겨 붙기에는 안성맞춤인 조건이 만들어져서 그런지 칠레는 매년 여름 수많은 산불에 시달린다. 매년,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연중행사처럼. 그런데 올해는 조금 심하다 싶다. 그리고 그냥 덥고 건조해서만 이렇게 많은 산불이 났다고 단순히 생각해 버리기에는 조금 석연치 않다. 

이 사진은 산불의 진원지를 지도에 표시한 것인데, 실제로는 동시에 300개가 넘는 산불이 실시간통계에 잡히기도 했었으니,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곳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해야 맞다아무리 덥고 건조해도 그렇지,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는데도 동시에 몇백 개의 산불이 계속해서 난다니.


실제로 통계를 찾아봐도 그 숫자와 피해 규모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작년과 올해 2월 중순인 현재까지의 통계로만 잡아도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발생한 산불은  총 4,668개이고, 이 중 2,300개가 넘는 산불이 전체 16개 주 중 2개 주에서 집중되어 발생했다. 더군다나 이 두 개 지역은 칠레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지역도 아니다. 


피해규모는 43,975헥타르에 달한다. 서울면적 전체가 60,500헥타르라고 하니 과장 살짝 보태 거의 서울 전체가 다 탔다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리나라와 달리 칠레의 소방대는 100% 자원봉사와 국민들의 기부로 이루어진다. 중앙정부에서 소방차 같은 기본적인 장비를 일부 지원받긴 하지만 소방대원들이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지는 않고, 그렇기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렇게만 말하면 '엥?'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매우 미심쩍은 생각이 드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를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하는 나름대로 확고한 이유도 있고, 어찌 되었든 1863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운영이 되고 있기에 역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비하면 장비력이나 조직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너무 덥고 건조한 이 나라의 기후도 산불에 매우 취약하다. 여름의 건조한 숲은 마치 성냥각처럼 조그마한 불꽃만으로도 불이 활활 붙어버린다. 거기에다 산불의 위험성에 대한 전국민 교육의 부족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부주의한 취사, 화재를 발생시킨 범인을 찾아서 처벌할 수 있는 조치도 아직 너무 부족하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산불들 중 적지 않은 일부는 사람에 의해 '의도된 산불'이라는 것이다. 


16세기 스페인사람들이 남미대륙을 본격적으로 정복하기 시작하며 그때만 해도 국경이라는 것이 딱히 없었던 남미에서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제국을 정복하며 실질적으로 지금의 칠레땅까지 도달한다. 이때 이 지역의 원주민인 마뿌체(Mapuche)들은 스페인 군대에 대항해 끝까지 싸워 그들이 거주했던 마울레(Maule)지역 이남으로는 스페인 군대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민의 대부분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스페인 사람들에 섞여 들어가며 흡수되고 아주 소수의 마뿌체들은 칠레의 일부지역(위에 언급했던 전체 산불의 반정도가 발생한 두 지역)에 집중해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칠레가 독립한 지 2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과 칠레 정부사이에는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칠레정부와는 독립된 그들만의 법체계가 인정되는 땅의 소유권 등을 주장하며 그들이 자치권을 주장하는 지역에서 다양한 테러활동을 이어나가는데, 이번 산불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소방대원들의 진화작업을 무력으로 위협하며 제제해서 산불 진화를 하지 못하게 막고, 또 산불을 계속해서 새로 냄으로써 그들의 요구사항을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것이 테러집단이 아니면 무엇인가..

대부분의 목재 수출회사가 집중되어 있는 해당 지역에 의도적으로 불을 질러 수많은 나무를 모조리 태워버리고 남은 타버린 황량한 땅은 너무나 처참하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남미의 거대한 자연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그들은 본인들이 이 땅의 원래 진짜 주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경계도 사실은 조금 애매하다는 부분도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한다. 칠레뿐만이 아니라 남미 대부분 국가의 인종은 메스티소(Mestizo)로, 이 대륙에 원래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과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계 인종이 섞인 혼혈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상이 원주민 마뿌체라고 해도 정확히 따지고 보면 그들도 결국 같은 칠레사람들일 뿐이다.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자본주의와 그에 맞서는 이들의 충돌도 아니고 칠레사람들과 원주민의 갈등도 아닌,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자연에 말도 안 되는 테러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테러의 결과는 결국 우리들의 몫이 될 것이 너무나 뻔하다. 이것은 인간의 잘못된 신념이 초래한 또 다른 종류의 재앙이다. 

테러가 자주 발생하는 이 지역에 많이 자라는 Araucaria 나무숲

우리나라 정 반대편인 여기에서는 이렇게 심각한 가뭄으로 인한 물부족, 그리고 이번 여름에 특히 심했던 산불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우리나라와 아무 상관없는 나라의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전염병부터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수만 명을 한순간에 삼켜버린 튀르키예 지진, 이번달 유해 화학물질을 가득 실은 열차의 대형화재로 근접지역 물고기가 깡그리 전멸했다는 미국 오하이오주,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이상 폭염과 폭설을 오가는 이상기후들...


그저 우리 손을 떠난 자연재해라고만 생각했던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이 점점 나를 식은땀 나게 한다. 결국 인류는 스스로 자멸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근거 없는 잘못된 이념과 나만 잘살겠다는 욕심, 자연과의 공생에 대한 무지함이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재앙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뿌연 창밖의 공기가 내가 고민없이 소비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의 빈곤과 자연의 풍요로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