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멘트 Feb 04. 2023

도시의 빈곤과 자연의 풍요로움

파타고니아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그게 무엇이든 어떤 것에 대해 좋기만한 혹은 나쁘기만한 편향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나는 그것의 다른 면에는 무지하다는 반증이다. 남미는 이제 내게 좋은 기억들과 그렇지 않은 기억들, 내가 아직도 너무나 사랑하는 것들과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가 결코 좋아할 수 없을것 같은 것들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달콤씁쓸한 초콜릿처럼. 


산티아고에서 약 2시간정도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면 파타고니아의 청정자연을 볼 수 있다. 부정할 수 없는 남미의 매력이다. 거대하고 웅장하고 경이로우며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서는 내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엄청난 세월을 거쳐 존재하는 생명과 자연이 나를 감싼다. 


노르웨이의 호수가 생각났던, Reserva Nacional Coyhaique
길을 가다 멈춰서니, 이런 풍경이...
하늘이 준 아침 선물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Cerro Castillo 가는길 (6km가 넘는데,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맞다. 저 웅장한 바위성위에 걸쳐져 있는 것은 빙하(!)이고 아래 있는 저 푸른 물은 호수다.
올라오니 온도가 과장없이 7도는 떨어진듯...탈듯한 태양을 받으며 올라왔는데 추워서 오래 있지 못했다.
파타고니아는 툭하면 비가 오고, 구름은 천천히 움직이다가 빨리 움직이다가, 해가 반짝 나고,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정부에서 개간을 위해 다 태워버리기 전에 태초의 모습은 어땠을까...
아래는 모두 타버렸고, 위에는 이파리와 가지가 무성한, 특이한 숲길..
칠레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길은 어디로 가든 정말 예쁘다.
집(?)으로 가는길
비가 떨어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풀을 뜯고 있는 양들...

도시가 없는건 아니다. 있긴 한데,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은 자본주의의 상징은 아직 들어서지 않았다. 나름 대형슈퍼마켓은 도시에 딱 하나 있는데 가니까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몰라도 가보니 계란이 없었고, 물이 없었고, 진열대 곳곳이 텅텅 비어있었다. 결국 물을 사지 못해 근처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야했다. 


자연이 내게 주는 에너지에 취한채 산티아고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왔는데, 거의 3시간이 가깝게 출발 지연이 되어 버스 터미널보다 작은 그 공항이 남대문시장 처럼 꽉 찼다. 영문도 모른채 줄을 서며 진이 다 빠진 사람들에게 항공사에서는 단 한마디 사과도, 설명도 없다. 그런데도 승객들은 3시간이 걸려 드디어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게되자 미소를 활짝 지으며 박수를 친다. 그래... 이게 남미지. 무질서와 무개념 서비스 정신, 불안정한 시스템과 뻔뻔함... 


그렇게 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이 할아버지는 지난 겨울부터 이 자리에 늘 있다. 나는 두세번 할아버지께 지폐를 쥐어드렸는데,  이렇게 하는게 할아버지에게 도움이 되기는 하는걸까. 

이 도시에는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이 정말 많다. 쓰레기를 뒤져서 그 안에 먹을게 있으면 먹고, 쓸만한게 있으면 챙겨간다. 나는 한동안 길거리 개들이 쓰레기봉투를 다 뜯어놓은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주말 아침, 산뜻한 기분으로 커피를 마시러 나가는길에 마주친 광경. 이 쓰레기봉투도 아마 지난밤 누군가가 헤집어 놓았을 것이다. 이 수많은 비닐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걸까. 이사진을 보면서 인상이 찌푸려지나? 이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떠나고 난 자리다.



도시에서는 그 어디에서보다도 빈곤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난과 인간의 존엄성이 무관하지 않지만 도시에서는 애석하게도 그 둘 사이의 관계가 훨씬 더 직접적이다. 


저 황량한 자연속에 사는 이들 중에도 분명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자연속에서 인간의 빈곤은 많은 경우에 물질적 단순함과 일상의 소박함으로 나타나는 반면, 도시에서의 빈곤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듯 하다. 산을 오르며 목이 마를 때마다 사람들은 빙하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로 목을 축일 수 있었지만 도시에서 목이 마르면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돈을 주고 물을 사야 한다. 자연속에서 인간이 배설하는 비인공적인 모든 것(배설물과 과일껍질, 채소 끄트머리, 고기의 부산물등 결국 자연에서 온 모든것)은 다시 순환되나, 도시에서 얻은 포장지로 감싸져있는 모든 쓰레기는 아스팔트와 시멘트 위를 돌고 돌아 인간을 역습한다. 어떤 형태로든. 


도시에서의 삶은 곧 내가 마시고 먹을 것 (그리고 그외에 내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거의 모든 것)을 돈이라는 화폐가치와 치환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그 화폐를 얻기 위해 나의 능력을 사회에서 끊임없이 증명해보여야 하는 정신적, 신체적 피곤함을 내포한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깨끗한 옷을 매일 매일 바꿔입고 다니기 때문에 나혼자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옷을 향기나는 세제로 세탁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과 함께 사는 인간에게 옷은 그저 내 몸을 보호하는 용도에만 그칠 수 있음에도 도시에서 옷이 갖는 상징성은 훨씬 더 다양하기에 결국 우리는 옷이 10벌도 모자라고 20벌도 모자라고 100벌이 있어도 모자라다. 그래서 우리는 갈수록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궁핍해진다. 


그리고 그 모든것은 결국 언젠가는 쓰레기가 되어 저 위에 사진처럼 비닐봉투 안에 넣어져 누군가의 눈앞에 나타나게 되겠지. 흉한 모습으로... 도시에는 우리가 평생동안 그토록 애타게 좇는 모든 부가 몰려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내게 도시는 오히려 빈곤하고 자연은 풍요로운 곳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