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일
알고 보니 지구는 참으로 작고
참으로 연약한 세계이다.
지구는 좀 더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 존재인 것이다.
<Cosmos>, Carl Sagan
칠레 스타벅스는 모든 멤버십 포인트 가입자에게 생일이 포함된 달에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준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때가 아니고서야 내 발로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지만 커피를 그냥 준다기에 개인 텀블러를 들고 가서 여기에 담아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했다. 순간 "음..." 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내 텀블러를 받아 들더니 내 텀블러를 커피 머신 앞에 두고 매번 쓰는 일회용 컵에 똑같이 커피를 내리더니 그 컵에서 내 텀블러로 커피를 옮겨 담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에 뭐라 할 건 아니지만.. 당황스러워서 한마디 했다. "내가 내 텀블러를 준 이유는 그 일회용 용기를 쓰지 않기 위함이었는데요..." 그랬더니 별것도 아닌 걸로 까다롭게 군다는 얼굴로 "아 네, 다음에 그렇게 할게요." 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동네 작은 커피숍이 아닌 전 세계 최대 글로벌 커피 기업인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밖에 나가면 길 곳곳에 쓰레기들이 수북이 쌓여있거나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다. 수많은 비닐봉지, 음식을 담았던 스티로폼 용기, 각종 포장재들, 휴지들... 서민들이 사는 동네는 이 온갖 쓰레기가 밖으로 나와있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이것들이 뒤로 교묘하게 잘 감추어져 있을 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마치 이 모든 쓰레기들을 버릴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지구에서 완전히 분해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쓰레기들을 죄책감 하나 없이 매일, 마구 생산해 낸다.
별다른 의식 없이 하는 소비는 쉽게 과소비가 되고, 과소비는 각종 건강 문제와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그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인간들은 다시 추가적 소비를 한다. 소비를 늘려도 나아지지 않는 이 우울함과 근본적 존재의 불안함 저변에는 '내 인생이 마땅히 이래야 한다'라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욕망과 강한 자의식이 깔려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두 가지가 현대 인류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최근 연이어 읽은 두 권의 책, '사피엔스'와 '코스모스'가 이 문제를 보는 관점의 스펙트럼을 넓혀 주었다.
사피엔스 (Yuval Harari)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 중심 종교에 의해 신성한 지위로 격상될 무렵, 농장 동물들은 더 이상 고통과 비참함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로 간주되지 않았고 기계 취급을 받게 되었다.... (중략).... 돼지는 포유동물 중 가장 지능과 탐구심이 뛰어난 축에 속한다. 이를 능가하는 동물은 유인원뿐이다. 하지만 산업화된 돼지 농장의 축사는 너무 비좁아서 돼지가 몸을 돌릴 수조차 없다. 암퇘지는 출산 후 4주 동안 밤낮으로 이런 우리에 갇혀있다. 그 후 새끼들은 살을 찌우는 비육이 되기 위해 어디론가 옮겨지고, 암퇘지는 다음번 새끼를 임신한다.... (중략)... 복잡한 감정 세계를 지닌 살아있는 동물을 마치 기계처럼 대하는 것은 그들에게 육체적 불편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스트레스와 심리적 좌절을 안겨준다."
코스모스 (Carl Sagan)
"단지 70년밖에 살지 못하는 생물(인간)에게 7000만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그것은 100만 분의 1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하루 종일 날갯짓을 하다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알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식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생명 현상의 뿌리에는 세포의 화학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 분자와 유전 설계도를 간직한 핵산이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본질적으로 같은 단백질 분자와 핵산 분자가 모든 동물과 식물에 공통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생명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참나무와 나는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좀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동물인 나와 식물인 참나무의 조상은 같다."
"현재 금성의 표면이 처한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재앙이 지구의 위치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읽게 된다.... (중략)... 석탄, 석유, 휘발유를 태울 때,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황산 기체도 대기 중으로 내보내 진다. 그렇기 때문에 금성에서처럼 지구의 성층권에도 아주 작은 액체 황산의 방울들로 이루어진 상당한 규모의 황산 안개 층이 형성된다. 우리의 주요 도시들은 유독 가스로 오염되어 있다. 인간이 무심코 행하는 일련의 활동들이 장기간에 걸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는 현재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며 살고 있다."
지구의 나이가 대략 46억 년 정도라고 봤을 때,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은 불과 20년만 년 전,
그리고 7만 년 전쯤 전부터 이 호모 사피엔스들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 곳곳으로 이동했고 (Great Leap Forward)
대략 1만 2천 년 전쯤부터 농업혁명에 돌입했으며,
약 500년 전에 과학혁명이 일어났고,
약 250년 전에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불과 50여 년 전에 정보혁명이 일어났다.
지구 여러 곳에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운이 좋아 자본주의 시스템에 나름 잘 안착한 사람들(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 대부분)은 삶의 편리성 측면에서는 불평할 거리가 별로 없을듯하다. 마음만 먹으면 기분전환이 되는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는 것도, 나가기가 귀찮으면 전화 한 통으로 맛있는 음식을 시켜 먹는 것도, 추우면 내 취향에 맞는 외투를 사는 것도, 쓰고 있는 물건이 낡으면 그 물건을 내 눈앞에서 한순간 사라지게 하는 것도(쓰레기통에 넣어버리는 일), 어딘가로 가고 싶으면 차를 끌고 가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인류가 지금처럼 이렇게 마음껏 욕망에 충실하게 소비를 할 수 있는 시대는 인류 역사상 전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불편할 것 하나 없는 현재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고, 자연과 동일한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가 동식물과의 공생관계를 처참하게 무시함으로써 초래될 일들에 무심하다는 사실은 어쩐지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봐도 영원의 시간에 가까운 우주와 지구의 역사에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하물며 한 개인의 인생은 그에 비하면 작은 점하나도 되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그 점 속에서 우리는 인류와 자연이 공생하며 살았던 엄청난 시간의 역사를 무시하고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을 파괴하고,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도 되는 듯 그 작은 점 안에서 수만 가지 감정을 느낀다. 인간 하나하나는 너무나 경이로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작고 찰나 같은 존재인지에 대한 사실은 이 우주 앞에서 한 인간의 무한한 겸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