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해외)생활을 하고있는 모든 이들에게
20대 초반 남미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만 살짝 맛본 탓(?)에 한국에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햇수로만 7년째 이곳에 살고 있으니 과장 살짝 보태서 남미에 젊음을 바쳤다고 말할 수도 있을까. 콩깍지가 씌어서 왔다가 그 콩깍지가 벗겨진 지는 이미 오래전이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러 가지로 회의가 들었다. 사회 곳곳에 숭숭 뚫려있는 빈틈을 잘 이용한다면 기회가 많은 곳이긴 하지만, 남미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알게 되면서 오는 무기력감과 좌절감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해외생활은 고단한 일이다. 어디인들 힘들지 않은 곳은 없겠지만, 남미가 하드코어인 것은 분명하다. 억울하고 답답한 일들에 화를 내봤자 속이 타는 것은 나 혼자이니, 매일을 수행자의 마음으로 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문득, 내가 그동안 여기서 외국인으로서 홀로 지내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그 모든 것들 중에서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 세가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꼭 이것들이 해외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당신을 위해서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다리를 놓아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당신만이 해야 하는 일이죠." 외로움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타인의 존재로 해소될 수 있는 외로움과 타인과는 상관없이 나의 존재에서 오는 근본적인 외로움이다. 두 번째의 외로움을 편의상 '디폴트 외로움'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종종 '디폴트 외로움'을 타인을 통해 어떻게든 지워보려고 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특히나 나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가족이나 배우자 같은 사람들에게 마치 본인의 외로움 해소라는 과제를 전가하듯 하는 것이다.
미국 시인 칼릴 지브란(Kahil Gibran)은 "그 사람을 사랑하세요, 그러나 그 사랑의 유대관계를 만들기보다는 서로의 영혼의 해변가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는 바다처럼 사랑하세요."라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내 영혼의 해변가와 당신 영혼의 해변 사이를 오가는 바다처럼 사랑하는 일이라니..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했던 '고슴도치 딜레마'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서로의 온기를 위해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있었다. 하지만 고슴도치들이 모일 수록 그들의 바늘이 서로를 찌르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추위는 고슴도치들을 다시 모이게끔 하였고,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수의 모임과 헤어짐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다른 고슴도치와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와 같이 인간 사회의 필요로 인하여 인간이라는 고슴도치들이 모이게 되었지만, 그들은 인간의 가시투성이의 본성으로 서로를 상처 입힐 뿐이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서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예의를 발견하였으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서로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거칠게 말해지곤 하였다. 이 방법을 통해 서로의 온기는 적당히 만족되었으며, 또한 인간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릴 일도 없게 되었다.
'최고의 수단은 다른 고슴도치들과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다른 고슴도치의 가시에도 찔리지 않으면서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온기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성적 디폴트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같다.
몸과 마음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서 나 자신을 건강하게 지키는 일은 그 누구도 나 대신해줄 수 없다. 해외생활을 하며 몇 년 동안 바로 옆에서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먹고 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들이 한국에 비해 많이 없다 보니 스스로 건강을 잘 돌보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말짱 꽝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중요한 말이라서 스스로에게도 다시 말해줘야 할 정도다.
여기에서는 위에 언급했던 타인의 존재가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영국의 한 신경과학자의 인터뷰를 봤는데,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스킨십이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잘 때도 혼자 자는 사람들보다 가족 혹은 배우자와 함께 살을 맞대고 자는 사람들이 훨씬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느끼고 면역력도 강하단다. 타인의 존재가 우리의 존재적 외로움까지 해결해 줄 수는 없더라도, 우리의 공허한 부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건강은 실력이기도 하다. 담백한 생활습관에서 담백하고 명료한 생각들이 나오니까. 그리고 작은 생활습관들과 식습관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니까. 쉽지 않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은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서 지켜내야 한다.
몇 년 전 여기에서 살면서 슬럼프를 가장한 향수병이 한동안 왔을 때 나는 내가 살던 아파트 한편에 내가 가져온 이민가방과 캐리어 두 개를 일부러 꺼내놨었다. 언제든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그 사실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었을 때였다. 그러다가 책상 앞에는 큰 포스트잇에 '오늘 밤 9시 대한항공 인천행 비행기'라고도 적어놨었다. 그 정도로 오늘 하루가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때였다.
나처럼 여기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과 자주 하는 말이긴 한데, 해외생활은 기본적인 스트레스 레벨이 늘 20~30% 정도는 추가로 붙어있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이 외국인으로서 겪는 서러움과 답답함, 여러 가지 제약들이 있어서 이런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평소에 조금씩 조금씩 쌓이면서 피로한 감정상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의 마음과 감정을 운영하는 일이 참 어렵다. 두서없이 마구 일어나는 감정을 잘 다듬어서 잘 승화시킬 수 있다면 나는 강해지고, 이를 서투르고 미성숙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표출하면 나의 품격과 존엄은 떨어진다. 품격과 존엄은 스스로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만이 감당해야 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의 사실주의 소설가 존 스타인백은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선한 것과 영웅적인 것은 다시 한번 떠오를 것이고, 또 쇠퇴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떠오를 것입니다. 그것은 악한 것이 승리해서가 아니라(그럴 수도 없지만), 선한 것과 올바른 것들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