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철저히 솔직해지는 일부터
어느 날 문득 나의 일상이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과는 영 상관없는 일들로 채워져, 잘못 탄 노선 위에서 중간에 내리지도 못하고 계속 앞으로만 밀려가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어제와 같은 삶을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의 초기증세"라고 했던 아인슈타인의 뼈 때리는 명언을 몰라서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내게 필요했던 것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한마디가 아니라, 어디에선가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이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아니, 그냥 시원하게 아예 리셋을 할 수 있는 매뉴얼이었는지도 몰랐다.
아인슈타인의 팩폭 명언을 다시 뒤집어보면,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기대한다면 어제와 같은 삶은 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지점에서 꽤 오랜 시간 막혀있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알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간 갖가지 방법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무언가가 명확해지길 바랐던 오랜 시간을 뒤로한 나의 결론은,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나의 개인적이고 고유한 욕망에 철저하게 솔직해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지 나의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주 작은 베이비스텝을 뗄 수 있고, 그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변화로부터 어제와 다른 오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의 솔직한 욕망을 지금 나의 현실에 채널링 할 수 있는 매뉴얼은 아래와 같다.
내가 어딘가에 돈과 시간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내게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파악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가계부를 쓰는 일이다. 수기로 쓰는 가계부가 귀찮으니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계부 어플을 쓰면 된다. 하루의 수입과 지출을 항목별로 기입할 수 있고 이것이 계속해서 꾸준히 쌓이면 항목별 지출과 수입을 월단위, 연단위로 보면서 내가 어디에 주로 돈을 쓰고 있구나를 아주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
이렇게 지출항목은 간편하게 볼 수 있지만 내가 사용하는 나의 시간을 이렇게 그래프로 보기는 쉽지 않다. 나는 구글 캘린더를 사용하는데, 여기에 내가 미리 계획한 일정을 적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어떤 일을 하고 난 후, 내가 이 일을 하는데 소요한 시간을 반대로 기록하기도 한다. 해당 task가 반복된다면 나중에 검색기능을 통해 내가 몇 월 며칠에 이 일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사용했는지 볼 수 있다. 기록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고 그 힘은 축적될수록 더 강해진다.
미국의 작가이자 금융 고문등 여러 가지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는 라미트 세티는 한 인터뷰에서 거꾸로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현재에서 미래의 나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내가 현실의 나를 굽어 보는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내가 원하는 인생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정도의 큰 액수의 돈과, 또 그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을 해보자. 그 모든 조건이 주어졌을 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은 뭘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3번에서 내가 놀란 부분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이 의외로 큰돈이 필요하기보단 꾸준히 내공을 쌓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위에서 작성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을 10년 후 할 수 있는 조건이 모두 갖춰진다고 했을 때, 내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물론 돈만 있으면 지금 바로 실행가능한 일도 있겠지만 그 일의 성격에 따라서는 돈이 있어도 나의 경험이 부족하거나, 공부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 수도 있다. 돈이 필요한 일이라면 얼마가 필요한지, 공부가 필요한 일이라면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주 자세히 적어보는 것이다.
이제 4번에서 쓴 상세내역을 1번과 2번에서 쓴 내용과 비교해 보면 내가 지금 내가 원하는 길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영 다른 길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2번과 4번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해야 할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매뉴얼의 모든 과정은 나의 개인적이고 순수한 욕망이 기본이 되어야지, 타인의 욕망이나 부모님의 바람 같은 외부적인 요소가 기본이 되면 안 된다는 것.
예를 들어, 1~2번에서 내가 가장 나의 금전과 시간을 많이 쏟는 곳이 쇼핑, 외식, 회사동료들과의 잦은 술자리인데 3번 단계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니 미술관 큐레이팅, 동화책 쓰기, 내 집 직접 디자인하기라는 결론이 나왔다면, 4번에서 이것들을 하기 위해 내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일들은 미술사 공부일 수도 있고, 동화책을 쓰기 위해 전 세계의 다양한 동화책을 많이 읽어보고 또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할 수도 있으며 내가 직접 그림까지 그려 넣고 싶다면 그림을 배우는 일도 될 수 있다. 또 직접 디자인한 집을 갖는 것이 꿈이라면 물론 돈을 주고 건축주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아는 만큼 보이기에, 좋은 디자인들을 많이 보고 나의 꿈을 더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내가 진짜 살고 싶은 인생과 나의 일상의 결을 맞추는 일. 이 둘 간의 적나라한 간극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무심코 살다가는 이 간극은 좁혀지는 것보다는 벌어지는 것이 훨씬 쉽다는 사실을 알기에, 가끔은 이 리셋 매뉴얼에 따라 나의 일상을 되돌아봐야 했다.
더디지만 나의 일상을 꾸준히 달래며 쌓인 축적의 시간 뒤로는 내가 지금 꿈꾸는 삶의 모습, 그게 아니라면 혹은 최소한 그런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충만감 정도는 허락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