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차고, 김영랑

나의 독이란 것은

by 짱구아빠


독을 차고

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시를 읽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글쓴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입장에서 시를 느끼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에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시인의 성장배경, 시가 쓰인 시대 상황, 시인의 작품 성향 등등. 따라서 작품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데, 보통의 공부방법은 '수능 언어영역'이 일종의 그 가이드가 된다. 예를 들어 위의 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상황에서, 이른바 '언어의 조탁사' 순수서정 시인 김영랑의 작품이다.』이 돋보기를 가지고 시를 접근하면 시는 생각보다 간단해진다. 일제 치하에 저항하기 위해 '독을 차는 시인'이 등장하고 그런 시인에게 '독을 그만 흩어버리라'라고 하는 현실적인 벗이 등장한다. 두 사람의 적막한 대화를 통해 시인의 갈등과 그의 결연한 의지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그에게 독은 시대적인 사명이자 개인의 숙명이며 완성이다.





위와 같은 감상이 어쩌면 제대로 그 시를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 포스티노'의 대사처럼 '시란 시를 읽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시인의 '독'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저항 정신이겠지만, 2017년에 사는 우리가 그것을 공식처럼 대입해 감상할 필요가 있을까. 시가 주는 메세지대로 읽되 내 방식대로 시를 이해해보는 것도 가치 있고 재미있는 감상일 것이다. 이 것이 두 번째 방법이며, 이 방법으로 시를 감상해 보려 한다. 나는 이 시에서 크게 두 가지 '관전 포인트'를 느낀다. 하나는 '독의 의미'이고, 나머지는 '독을 두고 나누는 대화'이다.



'독의 의미'


나는 맨 처음 고등학교 때 이 시를 접하며 '독'이라는 것이 일종의 '자기 구속', '자기 봉인'과 같은 것이라 느꼈다. 나 역시 그랬다. 철 모르고 놀던 중학교 시절, 계기가 있어 명문고 진학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그 다음부터 '나'를 지우기 시작했다.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감정'과 '즐거움'이란 대체로 방해요소인 경우가 많았고,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은 자제하는 편이 좋았다. 재주도 없는 데다 시작마저 늦은 나에게 '나답게'라는 건 사치였다. 주변과 나 사이에서 내가 용납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한 채 나를 지우고 그저 묵묵히 결심한 뜻만 바라볼 뿐이었다. 시인의 '독'과 나의 그것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독을 두고 나누는 대화'

시에 나타난 친구와의 대화가 실제로 친구와 했던 대화는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시선, 내면의 갈등을 친구로 설정하여 대화의 형태로 시인의 고뇌를 풀어낸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나름대로 시에 나타난 의식의 저변을 추론해 대화를 다시 구성해보았다.


시인의 친구는 말한다. '너답게 살라고. 마음속에서 너를 잡고 있는 '독'은 풀어주고 사람답게 살라고. 행복함을 추구하고 편안한 삶을 마다하지 말라고.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네가 품고 있는 그 뜻, 그 독기가 전부가 아니라고. 그러니 그 '독'은 풀어주고 고독에서 벗어나 함께 가자'고.

이런 친구의 말에 시인은 답한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허무하다고. 그 허무한 인생, 내 뜻대로 타협하지 않고 살아볼 것이라고. 내가 태어난 의미를 느낀적이 있었냐고. 고통스럽지 않은 적이 있었냐고. 어차피 힘들고 고독한 인생. 나는 내가 가기로 한 길을 가겠다고. 그것이 내 삶의 의미고 부끄럽지 않을 길이다.' 라고.

대화의 형식을 통해 시인은 '독'을 차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듯하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는 있지만 '독'을 풀지 않겠다고, 어차피 고통스럽고 허무한 인생 내 뜻을 온전히 하여 부끄럼 없이 살겠다고 말이다.




'나의 독이란 것은'

비록 나의 '독'이라는 것은 시인에 견주기는 한참은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름대로 숭고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허황된 것이도 하고. 여하튼 나는 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들이 많았다. 그리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기에, 받은 도움들을 보답하고 싶다. 조금만 욕심을 내자면 내가 겪었던 어려움들을 다른 누군가는 겪지 않길 바라면서 살고 싶다. 그것이 '나'를 더 갈아 넣고 괴롭게 하는 형태라도 그것이 내 삶의 의미와 이유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인생이 행복하고 즐거워야만 할 이유는 없는 것이라고, 보람된 인생이 꼭 행복한 인생은 아니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독려하면서.

내가 살아온 길은 '독'을 던져버리기에는 모양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태껏 '독'을 차고 살아왔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친구들은 내게 항상 말했다. 왜 눈앞에 있는 정돈된 길을 놔둔 채 주저앉아 있느냐고. 그런 친구들에게 인생이 즐거워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답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묵묵히 듣고 있기도 했다. 그 사이 서른이 되었고 얼마 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말이 맞음을 인정했다.

이제는 내 삶에서 그 '독'을 놓아주기로 했다. 세상의 고통에 헌신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바람에는 변함이 없다. 대신 숭고함으로 포장된 허황된 꿈이 있던 자리는 내가 가진 것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을.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던 공허한 욕심에는 타인만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가 행복한 삶을 꿈꾸며 살아보기로. 그렇게 '내' 속에 독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풀어 가며 살아 보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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