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최근 책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의 시류와 맞물려 유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요즘 사회에서 페미니즘 얘기는 참신하고 지겹고 차갑고 뜨겁고 부끄럽고 시원하고 지겹고 격렬하고 한심하고 답답하고 불편하고 다행스럽기도 한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또한 읽는 내내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다. 책 전체적으로 근거가 부족하거나 비판의 논거가 맞지 않는 부분들, 또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고 여자의 입장에서 나의 경험이 떠오르는 내용도 꽤 있었다.
53p 올림픽을 위한 외국인들의 귀화를 ‘우리’라는 범주에 넣기에는 적절한 예시가 아니다. 올림픽 시즌이 되어서 귀화하는 외국인 선수들을 ‘우리 국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과연 검증된 견해인가?
그들이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거주하며 국민의 의무와 역할을 다하는 것도 아니며, 귀화 후 올림픽 경기를 마치고 나서 바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행위를 보면, 그들은 자국의 특화된 스포츠 경쟁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취약한 종목 및 필드에서 메달을 따고자 하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우리나라 또한 특정 시즌에 메달 개수를 늘리려는 목적이 있으므로 그 시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뿐, 그때의 귀화를 ‘우리 국민’의 범주로 이해하고 우리 국민들이 그들을 ‘우리 국민’으로 심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억측이다.
55p 이 이야기는, ‘여성으로 흑인이면서 동성애자라면?’이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소셜실험 ‘너라면?’ 청년들에게 당신은 보통사람인지를 물었다>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특권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때의 기분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동영상이었다. 그동안 당연하던 많은 것이 사실은 특권이었고, 그것과 그것들을 가질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새로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65p 명문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얻는다. 덜 우수하고, 덜 성실하며 노력이 부족하다는 선입견, 일을 잘 못 할 거라는 기대를 받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실 모든 고정관념은 현실의 선택적 반영에서 시작된다고 항변하고 싶기도 했다. 즉, 고정관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선택받은 현실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고정관념이 거짓은 아니라는 얘기다.
생각해보면 좋은 대학에 간 사람이 무조건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아닐 수는 있지만, 최소 운이 좋거나 능력, 머리가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는 늘 있는 것 같다. 운, 능력, 노력 중 1개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반면 안 좋은 대학을 진학한 사람이 모두 노력을 안 했을 거라고 믿는 것은 편견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 사람 앞에 운(능력) 좋은 명문대생이 있으니, 지방대생이 기회를 얻을 확률은 더욱더 적어진다.
명문대생의 경우, 대학 간판이 학창 시절을 적어도 나만큼 노력하고 성실하고 자기 관리를 잘했다는 것을 검증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회사에서 그런 사람을 채용하거나 결혼의 배우자로 선호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69p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인가, 아니면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인가가 나는 아직도 굉장히 궁금하다. 또 선택과 취향에 있어서도, ‘남자는 파랑을, 여자는 분홍을 좋아한다’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걸까? 어린이들의 차별 의식은 어른들이 심어준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일견 옳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 것 같다.
“너 어디 살아?” “어떤 차를 타?”라고 물어보는 것은 어른들의 교육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린이들이야말로 본능적으로 “너는 왜 이렇게 뚱뚱해?” “너는 왜 이렇게 까매?”라고 물어보고 나와 다른 것을 터부시하는 것,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
이것은 과연 본능인가, 사회화의 결과물인가 하는 것은 아무리 얘기해봐도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결국은 어떤 것이 차별인가, 무엇을 개선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매시간 얘기하고 토론하고 합의라면서 바꿔나가야 하는 숙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이 차별받는 상황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느끼면서도 차별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하고, 타당한 근거 없이 자신의 호오를 표현하는 것이 본능적으로 내재되어있다. “선생님이 나만 미워해.”라고 억울했던 기억은,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씩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차별받은 기억은 감정적으로 남아서 뇌리에 박힌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와 생김새, 취향, 성격,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매 순간 차별하면서 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는 생각보다 더 능력주의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이 사회가 주입한 사고방식인지 아니면 이제까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사회가 그 이념을 바탕으로 굴러가는 것에 익숙하고 그 사이클에 나도 동조하고 있으며, 심지어 내가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생각할 거리를 제시해주는 점이 참 좋았으나 구체적인 해법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책이었다. 차별과 평등에 대한 정답은 결국 없으며, 결국 끊임없이 묻고 또 묻고 토론하고 얘기하여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그 차이를 줄여나가야겠다. 결국 그 생각의 차이가 아예 사라질 수는 없지만 그 격차를 좁혀나가는 열린 분위기의 사회가 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은 항상 사회보다 늦게 발전하는 법이니까, 사건이 생기면 그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이 제정되면서 우리 사회가 점차 나아지고 있으니까, 이런 논의들이 활발해지고 다함께 고민해나가면서 우리 사회가 이제껏 점점 좋아져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점점 더 살기 좋아지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미지 출처 <a href="https://www.freepik.com/free-photos-vectors/background">Background vector created by freepik - www.freepik.c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