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착한 책이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심코 외면하는 사각을 포착하고 인식의 전환을 독려하는데, 임팩트가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느슨했던 긴장을 새삼 다시금 잡을 정도로 죽비를 내려치는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차별금지법을 비중 있게 다루긴 하지만 이 책은 사회를 개선해나가는 데에 강제적인 수단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법을 통한 통제만으로는 진보적인 시민들의 요구를 따라잡지 못하고 오히려 뒤처질 수도 있음을 내비친다. 차라리 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기제가 개개인의 무관심 또는 오류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편이 차별을 완화 내지는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이러한 환기와 각성을 통해 충분히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기대 역시 엿보인다, 책의 제목이 'OO사회' 류가 아니라 선량한 차별주의'자'인 것도 그러한 맥락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요컨대, 선량한 지식인이 계몽함으로써 아직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머무르는 이들도 사회적 모순을 꿰뚫어 보고 선량한 사람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다는 인상이다,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정말 허약한 주장이라는 생각이다, 차별을 둘러싼 논쟁적인 질문들을 검토하고 자신의 주장의 핵심적인 전제를 밝히고 나서 그 위에서 논의를 전개했더라면 논의의 수준은 제한적이겠지만 보다 탄탄한 주장이 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앞선다, 예컨대, 차별이 이례적인 문제 현상인가? 인간이 본디 선량한가? 공정함의 본질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책에서는 차별이 분명히 문제 현상이고 인간의 본성이 본디 선하며 공정함의 본질이 불평등의 해소라고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한다,
하지만 어떠한 이들은 차별은 인간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며 도리어 이러한 불평등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전제 위에서 너무도 쉽게 차별의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다, 이 책은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에서 상대방이 서있는 전제를 파훼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를 언급하지 않는다, 어쩌면 저자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반쪽짜리 책이 될 뿐이다, 저자의 주장에 대체로 공감하지만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 책이 현실에서는 무용한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기서는 입장, 맥락, 유동성, 불안정 등의 표현을 쓰면서 갖은 외부적 압박 속에서도 개인 스스로가 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차별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맥락으로 대변되는 외부의 조건에 대한 설명이 엄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맥락과 주체를 구분하고 맥락과 별개로, 다시 말해 맥락을 극복하고 주체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은데, 인간을 맥락에서 완전히 분리할 수 있겠는가, 맥락 안에 내가 아닌 다른 행위자들의 '주체' 또한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에 뭐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의 주장에 따라 스스로 의식적으로 편견을 극복해나간다고 한들, 이 책은 '공정한 차별'을 주장하는 또 다른 주체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유의미한 답을 주고 있는가.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이상 미시적인 차별 해소 방안은 공허할 뿐이다,
보다 현실적이고 때로는 강제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래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서술은 못내 아쉽다, 이 역시도 법안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도입을 촉구할 뿐, 도입 과정에서 예상되는 현실적인 난제들을 심도 있게 분석하지는 않는다, 가장 진보적인 형태의 차별금지법 도입은 현재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회 구성원들의 원만한 합의도 요원하고 국가의 의지도 미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몽한 개개인들의 지향과 신념이 모여 끝내 차별금지법이라는 지점이 다다르기를 낙관하고 있다,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바가 곧 '인류가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라는데, 논의의 층위가 순식간에 비약하는 느낌이다, 나이브할 정도로 교과서적인 표현 아닌가,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내용이 결론이라면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착한 책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관건은 철학도 아니고 법도 아니고 정치에 있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해 왜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는가, 개인적으로는 차별방지법에 대한 부분은 조금 더 과격하고 급진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다, 개별 욕망, 신념, 종교 등 모든 것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데, 이 진흙탕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예리한 무기를 왜 꺼내지 않는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책에서 '소수자 집단'으로 호명되는 이들이 과연 정치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인가, 이들 집단 내부에서도 차별금지법을 대하는 온도 차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들 사이 우선순위를 나누지 않고 그들끼리 엇갈리는 이해관계 또한 세련되게 짚어줄 필요가 있다, 이 법이 궁극적으로 겨누고 있는 한국 사회 기저의 편향성과 이 법이 놓칠 수도 있는 '소수자 집단' 내부의 균열을 자세하게 짚어주었다면 더욱 탄탄하고 생생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총평하자면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한국 사회에 일정 정도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겠지만, 그 영향력의 온도나 밀도가 다소 아쉽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일전에 읽었던 '말이 칼이 될 때'와 비교하며 읽는 것 또한 유의미한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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