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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Nov 21. 2020

나의 특이한 취향

함께쓰는 한 단어 『나의 특이한 취향』, Joy님의 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 어떤 모양이든, 부엌이기만 하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기능을 잘 살려 오랜 세월 손때가 묻도록 사용한 부엌이라면 더욱 좋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깨끗한 행주가 몇 장 결려 있고 하얀 타일이 반짝반짝 빛난다. 구역질이 날 만큼 너저분한 부엌도 끔찍이 좋아한다.



바닥에 채소 부스러기가 널려 있고, 실내화 밑창이 새카매질 만큼 더러운 그곳은, 유난스럽게 넓어야 좋다. 한 겨울쯤 무난히 넘길 수 있을 만큼 식료품이 가득 채워진 거대한 냉장고가 우뚝 서 있고, 나는 그 은색 문에 기댄다. 튀긴 기름으로 눅진한 가스 레인지며 녹슨 부엌칼에서 문득 눈을 돌리면, 창 밖에서는 별이 쓸쓸하게 빛난다.     



-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中 -     





#1.

 나는 요리를 싫어한다. 요리? 청소, 빨래, 설거지, 분리수거 등 여러 가지 집안일들 가운데에서 단연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지만 먹는 데는 30분도 채 안 걸리는 가장 가성비가 낮은 일.



게다가 나는 요리 신생아라 뭘 한 번 해먹으려고 들면 숙달된 주부인 엄마보다 재료 손질과 조리도 오래 걸리고 설거지도 어마무시하게 나오기 때문에(능숙하게 설거지 거리를 줄이거나 정리하면서 요리하는, 요리 좋아하는 친구를 볼 때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먹기 위해 들이는 에너지가 너무 큰 나머지 점점 더 요리를 싫어하게 되었다.



싫어한다기보다는 시간 여유가 많고 에너지가 있는 주말이어도 딱히 요리하고 싶은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여러 가지 집안일들 중에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한번 하고 나니까, 요리에 취미를 붙일 만한 나이와 시기가 되어도 도무지 정이 붙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거나 부모님과 살 때에는 부모님이 요리를 해주시니까 할 기회가 적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같이 살고 있는 형제자매가 또 틈틈이 스스로 요리를 해먹던 걸 보면, 순전히 성향 차이인 것도 같다. 자취할 때에도, 친구들이 쉬우니까 꼭 한번 해먹어보라고 강추한 레시피를 가지고 미역국 한 번, 볶음밥은 몇 번 정도 해먹었을 뿐, 요리다운 요리를 해먹은 일은 손가락에 꼽는다.      


#2.

 필시 요리를 싫어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나 대리 만족 때문인지, 나는 요리 영화나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요리하는 모습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지면서 힐링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요리할 때는 허둥지둥, 정신없이 어설프게 하게 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갈하고 단정한 손길로 한 끼의 음식을 능숙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왜 사람들이 요리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본 영화 <심야식당 1,2>, <카모메 식당>,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겨울과 봄> 같은 영화들은, 요즘도 쉴 때면 틀어놓고 종종 본다.



 일본 인디영화 중에 <하프웨이>라는 영화가 있다. 청춘남녀 고등학생 둘이 풋풋하게 연애하는 내용이 아기자기한 잔잔한 영화다. 2010년에 요리 영화도 아닌 이 청춘 영화를 독립영화 상영관에서 보고는, 한동안 꽂힌 장면이 있었다. 지방에서 도쿄로 대학을 가는 남자친구를 보내는 날 아침,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장면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겨울 아침에 실제 일본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 생활감 넘치게 복잡하고 좁은 부엌에서, 여고생이 엄마의 코치를 받으면서 남자친구를 위한 도시락을 만든다.



 계란말이를 위해 계란을 풀고, 식용유 두른 팬에 잘 푼 계란을 붓고, 뜨거운 기름에 가라아게를 튀기고, 토마토와 당근으로 하트 모양을 내는, 귀여운 여고생의 서투른 요리. 영화를 처음 본지 여러 해가 지난 후에도 그 부분이 나에게 크게 다가와서 오랫동안 아주 많이 돌려보았다.



 무엇보다 요리를 싫어하고, 당시에 마침 남자친구도 없었고, 엄마와 사이도 좋지 않았던 나는 ‘엄마의 코치를 받으면서 남자친구에게 줄 도시락을 싸고 있는’ 그 장면이 꽤 오랜 시간동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나에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3가지 일이 동시에 그려진 장면이어서, 그 현실감 넘치는 1분여의 장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그 장면들을 몹시 비현실적인 기분을 느끼면서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열심히 돌려보았었다. 그러면 그 때의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나보다.     


 

 엄마가 해준 이런저런 음식을 먹으면서, 몇 번 물어본 적이 있다.



 음식 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가족들이 빨리 먹어치우고 나면 안 허무해? 어떤 새댁은 요리가 서툰 신혼 때 몇 시간 걸려 시금치나물을 무쳐 내놓았더니, 퇴근한 신랑이 그걸 순식간에 다 먹어버려서 허무한 적이 있었다던데.



 가족들이 먹는 건데 뭐가 허무해. 가족들 맛있게 먹이려고 요리한 건데. 잘 먹기만 하면 다 좋아.      



 끄덕끄덕. 더 덧붙일 만한 말도 없는 완벽한 대답이어서 입 다물고 먹던 밥을 마저 더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3.

 시간이 흐르면서 종종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해준 음식을 먹을 일이 생긴다.


 식당에서 식사할 때는, ‘음식을 해주는’ 수혜를 입었다는 생각 대신 내가 낸 비용과 서비스를 등가교환 했다는 메마른 생각이 앞섰다. 돈을 냈으니 맛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만인 서비스. 또 주방과 테이블이 분리된 공간이라 ‘누군가가 나를 위해 뭔가를 요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가 마음먹고 해준 요리 접시를 받아들거나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요리해준 도시락을 받았을 때는, 상대방이 온전히 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요리해서 내놓았다는 그 일련의 과정이 몹시도 가슴 벅차게 다가오곤 한다.



 결국 나는 그 요리만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고르고 사고 손질하고 레시피를 고민하고 오랜 시간 끓이고 졸이고 볶고 삶은, 그리고 접시에 예쁘게 플레이팅해서 내놓은 그 모든 시간과 수고로움들을 다 먹는 셈이다. 뭘 해주면 좋을까, 무슨 맛을 좋아하려나, 입에 맞을까, 맛있게 먹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상대를 위한 배려와 기대도, 갓 나온 음식과 함께 접시를 데운다.    



  

 가족이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도 그런데, 하물며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는 더욱 그런 고마움이 크게 다가온다.  요리하는 거 안 힘드냐는, 나의 단골 질문을 요리 잘하는 친구에게 던졌더니, 친구의 우문현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해준 음식 먹고 친구들이 웃고 떠들고 맛있다고 좋아하고 있는 거 보면 그냥 기분 좋아. 그거 보면 나는 안 먹어도 기분이 좋고 배가 불러.”     



 누군가를 먹인다는 일은, 이토록 따뜻하고도 고마운 일이다.



Written by.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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