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다르게 적힐 말들 3월, '봄'
가벼운 주머니를 가진 사람이 실용적이지 않은 값비싼 물건을 살 때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게 좋다. 그게 아니라면 합리화라도 필요하다. 미술평론가 김용준은 없는 형편에 미술품으로는 가치 없는 못생긴 두꺼비 연적을 샀다가 부인과 대판 싸운다.
쌀 살 돈도 없다는 부인에게 두꺼비가 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고 소리를 친 그는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라는 수필을 써 돈도 벌고, 왜 두꺼비 연적을 사야만 했는지를 설명했다. 나도 없는 형편에 경매에서 황창배 그림 한 점을 낙찰받았다가 사람들에게 냉소 어린 핀잔을 받아야 했다. 나는 왜 황창배 그림을 사게 됐는가. 이 기회에 나도 김용준처럼 자기변호를 해보겠다.
황창배(1947~2001)는 ‘한국화의 테러리스트’로 불린 화가다. 전통적인 동양화(한국화)는 그림의 주제나 형식, 재료까지 정해져 있었으나 황창배는 이를 탈피하고자 했다. 그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다음해인 1979년부터 화법을 점차 바꿔 구상과 비구상을 아우르는 그림 세계를 구축했다. 밑그림 없이 시작해 상상력으로 화면을 채워나간 그의 그림은 틀과 형식,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웠다.
내가 낙찰받은 그림은 30대의 황창배가 화법을 전환하기 시작한 1979년 봄에 그린 비구상 소품이다. 먹의 농담과 선으로 화면 대부분을 채워 넣어, 작은 그림이지만 무게감이 있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는 하늘색 크레파스로 쓴 낙관이 있다. 검은 먹과 하늘색 크레파스의 대비는 파격적이다. 전통적으로 수묵화에는 색을 잘 쓰지 않을뿐더러, 당시에는 지금처럼 그림에 미술 재료를 섞어 사용하지 않았다. 동양화에는 동양화 재료만, 서양화에는 서양화 재료만 썼다.
그러나 황창배는 수묵으로 그림을 그리고 크레파스를 사용해 이 그림을 언제 완성했는지를 기록했다. 나는 검은색과 하늘색의 대비에서 틀과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구축하는 젊은 작가의 기백을 느꼈다. 이 그림은 1979년 봄날, 황창배가 틔워낸 하나의 싹이 아닐까. 이러한 시도와 작품이 쌓이며 1980~90년대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꽃피운 것이다.
인간은 견고한 틀을 깨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그 투쟁의 일환으로 보이는 그림이 경매에 나왔다면 한국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진 돈은 별로 없어도 기꺼이 입찰은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황창배 그림을 사게 됐다. 사람들에게 대체 이것을 얼마 주고 산 거냐며 돈 쓸 생각은 그만하고 저축이나 잘하라는 훈수를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인간은 견고한 틀을 깨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그 투쟁의 일환으로 보이는 그림이 경매에 나왔다면 한국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진 돈은 별로 없어도 기꺼이 입찰은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황창배 그림을 사게 됐다. 사람들에게 대체 이것을 얼마 주고 산 거냐며 돈 쓸 생각은 그만하고 저축이나 잘하라는 훈수를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김용준은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에서 고독한 나를 이해해주는 건 못생긴 두꺼비 연적밖에 없다고 했다. 김용준은 고인이 됐고 두꺼비 연적도 사라져 글만 남았다. 내가 고인이 되고 이 글이 사라져도 황창배의 그림만은 남았으면 좋겠다. 미술계에서는 황창배를 역량에 비해 저평가를 받은 화가로 보고 있다. 하루빨리 황창배에 대한 재평가와 재조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 김에 김용준의 두꺼비 연적처럼 황창배의 그림이 내게 돈을 벌어다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