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다르게 적힐 말들, 23년 3월
3월이면 새해하고도 지난 시점에 무언가 진척되어 있거나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당장은 부러진 손톱에 눈길이 간다. 늘 이렇다. 새해, 새학기, 20살, 30살이 되었다고 해도 늘 눈 앞에 있는 일이 먼저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을 받아놓고 이걸 어떻게 내려놓을지 고민하고, 당장 이번주까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곱씹는다.
그래도 가끔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들을 시작할 것인지, 무엇을 위해 이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답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당장 오늘이라도 퇴근길에 부웅 쾅 하고 사고가 나면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게 삶은 종료될테니까 말이다.
분명 물리적으로는 집을 향하고 있었을테지만 왜 노트북을 들고 집에 가고 있었는지 생각하면 고민이 된다. 단순히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있고 싶어서일까, 장애물을 극복하고 이 업무를 잘하게 되는 것이 중단기 목표였던걸까, 그것도 아니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멋져보이려고? 생각은 탐탁치 않은 대답들만 내뱉는다.
그럼 이건 어떨까, 사실 그 업무를 열심히 해서 잘하게 되는 것에는 궁극적인 목적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타인과 부대끼며 답답하리만치 늘지 않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걸 지나가는 데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면 너무 허탈할까 생각한다.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그렇다. 만나서 도움받으려고? 내 편으로 두려고? 모두 아니다. 무엇이 느껴질지, 무엇이 얻어질지 모를 일이다.
결국 노트북을 들고 집을 향하던 나도 무엇이 손에 남게 될지 모른채 그 과정을 느끼려고, 지나가듯 떠오르는 잡념들 그것들을 떠올리기 위해서 유혹을 이겨보려 하고, 서러움을 감수하고, 남은게 없다는 실망감을 감내하는거다. 대단한걸 기대하지 않는다는게 포인트이다. 이런 사람이 되고싶다.
거창한걸 바라며 좌절하는 사람이 아니라 집에가서 마시는 시원한 물 한 모금, 오랜만에 오는 친구들의 연락에 타닥타닥 답하는 타자기 소리, 놓쳐왔던 것들을 영화 속에서 포착하는 어느 한 순간, 조금씩 종이에 남기는 일기 몇 줄로 충분히 살아가는 사람말이다.
내 새해 목표는 이제야 이렇게 정리되었다. 무엇이 얻어질지 모르지만 그걸 담을 바구니를 들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되는걸 목표로 하겠다. 마음 한 구석에 마음을 먹고 오늘도 노트북을 들고 퇴근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