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다르게 적힐 말들, 23년 4월
「씁쓸한 3월」 , 김심슨
친구가 드라이브를 가자며 차를 끌고 밤늦게 찾아온 적이 있다. 카 오디오에서 백현의 유엔빌리지라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SM 아이돌의 팬인 친구는 이참에 유엔빌리지를 가보자며 한남동으로 차를 몰았다.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차를 타고 올라가자 어느 순간 놀이터가 나왔다. 그 근처에 주차를 하고 동네를 산책하는데 고급빌라 사이사이로 보이는 한강이 가히 일품이었다.
“나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다. 저런 집에 살면 행복해서 걱정, 근심 같은 건 하나도 없을 거 같아.”라는 말에서 시작해 돈이 많으면 무엇을 할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산책을 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처음에나 재밌었지 오밤중에 여자 둘이 길도 모르는 남의 동네에서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한강 둔치나 가자며 다시 차로 걸어가는데 고급빌라와 경치를 구경하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이를테면 개똥을 버리지 말라는 표지판과 누군가 먹다 버린 맥주캔 같은 것들. 그제야 우리 눈에 고급 건물이 아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보였다. 한강이 보이는 고급빌라에 산다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근심, 걱정, 불안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니.
새벽 한강 둔치에서 우리는 유엔빌리지를 산책하며 얻은 일종의 깨달음에 대해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원이든 한남이든 뉴욕이든 장소가 어디든지 그곳에는 일상이 있고, 우리가 일상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 듯이 그곳의 사람들도 일상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거 아니겠냐고. 검은 한강에 비치는 불빛을 보며 우리는 “행복은 장소에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는 장소는 달라도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니 가지지 못한 것에 아등바등하지 말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자는 다짐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맥도날드에 들러 각자 좋아하는 맥모닝 세트를 먹었다. 마음이 통한 친구와 수다를 떨며 맛있는 핫케이크를 먹은 그때에 나는 행복했다. 걱정 근심이나 한강 뷰에 대한 부러움 같은 건 느낄 새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