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다르게 적힐 말들, 23년 4월
「유엔빌리지」 , 김심슨「유엔빌리지」 , 김심슨「유엔빌리지」 , 김심슨
「씁쓸한 3월」 , 김심슨
아침에 눈을 뜨면 목이 마르거나 화장실이 마렵다.
정신은 말똥말똥한 듯 하지만 약간 멍한 몸상태로 시원한 물 한 잔을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요즘은 속이 차서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러거나 화장실을 가서 고인 물을 비운다. 멍한 상태의 몸은 그제서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적인 상태인 몸이 새로운 물이 들어오거나 고인 물이 나가며 순환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몸을 서서히 움직이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상태 같았던 정신이 몸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다. 오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며 하루가 서서히 움직인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무언가를 마시는 일은 이제 우리의 삶에서 하나의 공식이다. 같이 밥을 먹었어도 성에 차지 않은 듯 커피나 술을 마시러 가서야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계속 물이 들어오며 나가며 몸이 순환하고 내 머리와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가 줄줄줄 흘러나온다. 그러나 정적인 상대를 만날 경우에는 커피나 술을 마셔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상대방도 의식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화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로는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대이다.
그럴 때는 몸이 굳어있어서 뭐가 들어가도 순환이 안 되어서일 것이다.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함께 걸으며 굳어있던 몸을 풀어 조금 유연해지는 것이다. 정적인 상태는 조용히 변화하는 주변의 모습에 자연스레 섞이게 된다. 커피나 술보다 함께 보는 풍경이 들어와 흘러간다. 또는 말로는 알 수 없는 걸 발견할 수도 있다.
나를 상대할 때에도 비슷하다. 혼자 집에서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부여잡고 있을 때나,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많은 걸 알아도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는 무작정 바깥 바람을 쐬러 나간다. 안이나 밖이나 비슷한 상황으로 느껴지지만 걸으며 몸을 조금 쓰면 자연히 생각은 조금 줄어든다. 항상 똑같은 집의 모습보다, 비슷한 듯하지만 계속 바뀌는 바깥 풍경은 새롭게 다가오며 그 안의 변화를 찾느라 금세 고민은 희미해진다. 고여있던 생각은 하나의 흘러갈 생각이 될 것이란 걸 자연히 느끼게 된다.
물이 순환하며 생명이 건강하게 이어지듯 산책은 생각을 순환시켜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게 아닐까. 머리와 마음에 쌓아두기만 하면 병이 되니 산책으로 흘려보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