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북클럽 열여덟번째 모임 기록
작가의 유명세 탓이랄까, 개인적으로 김영하의 책 '여행의 이유'에는 평가가 인색해진다, 여행이라는 구체적 행위를 넘어서 삶에 대한 일반론적인 통찰을 담고 있지만, 깊이가 기대에 못미치는 것 같다, 다만 아무래도 소설가의 글이라 그런지, 내가 가진 언어로는 앙상하고 두루뭉술하게 표현되는 상들을 풍부하고 적확한 언어로 다시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거칠긴 하지만 간편한 도식들을 새삼 얻을 수도 있었다, A가 있다고 했을 때, 이를 반대하는 反A가 있다, 그리고 이 모두를 거부하는 非A까지 시야를 넓힌다, 하나의 이항대립과 이것 자체를 거부하는 제3의 상태, 나를 비롯해 주변의 세계와 마주할 때 이러한 도식은 꽤나 유용하다,
예컨대 책에서는 근대적인 여행자와 前근대적인(反근대적인) 여행자로 나누는데 이러한 구도 바깥에 脫근대적인 여행자의 자리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성원권에 대해서도 나의 성원권이 유효한 곳과 나의 성원권이 정지한 곳, 그리고 성원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을 상정할 수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somebody와 nobody 사이 극단적인 경계를 무색하게 할 anybody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실 이러한 류의 도식을 적용하기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근대 이후 인류 사상의 변천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된 이상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이 다소 겸연쩍긴 하지만, 이 책이 그러하듯 '여행'의 의미를 추상화하자면, 사고의 지평을 개척해나가는 독서 또한 당연히 '여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