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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Oct 14. 2019

『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나무가 아닌 숲을 본다는 것은


더북클럽 서평팀 책갈피

리뷰작성자 : 북치는 소녀





나무가 아닌 숲을 봐라. 

올해 초 신입사원이 입사해 무사히 수습기간을 마쳤을 때 선배가 했던 말이다. 선배는 숲의 한 구성원인 나무로서 잘 자라야겠지만 동시에 나무가 숲과 잘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장문의 카톡 공지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네’였다.


하루하루 일 아니면 불호령이 쏟아지는 신입에게 ‘어른’들이 하는 참 쉬운 말 같았다. 이같은 생각은 책 ‘남아있는 나날’을 읽으면서 바뀌었다. 나무로 살면서 숲을 보는 건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꼭 필요하다는 점을.



#최고로 이어지지 못한 최선의 노력

책은 영국의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의 집사로 평생을 보낸 주인공 스티븐스가 새로운 주인의 호의로 생애 첫 여행을 떠나는 것을 줄거리로 한다. 늙그막에 평생을 살아온 저택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과거를 돌이켜본다. 그는 달링턴 경을 모시면서 저택에서 치뤄진 수많은 비공식 회담, 파티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전성기가 지나고 다 늙은 이 순간 남은 것은 ‘위대한 집사’라는 자부심 하나였다. 



 그러나 책을 다 읽다보면 이 자부심마저 공허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모셨던 달링턴 경은 결과적으로 독일 히틀러에 속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지게 했다. 달링턴 경의 선의는 자신이 나치 지지자라는 세상의 비판을 듣게 만들었다. 최선을 다해 주인을 모신 집사도 그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아버지의 임종까지 포기하며 일한 결과이기에 더 애달펐다.

 

스티븐스의 최선이 최고로 이어지지 않은 건 그가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인 탓이라고 생각했다. 주인의 잘못된 지시에 그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다. 유대인 하녀를 아무 이유 없이 쫓아내라고 했을 때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훌륭한 나무일지언정 좋은 숲을 만드는 나무는 못됐던 셈이다. 



#모든 사람은 시대에 구속돼 산다

흔히 내 삶은 사회적 이슈와 동떨어져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세월호 사고가 났어도 나는 내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먹고 자고 있고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도 나는 출근하고 월말이면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런 일들은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배를 타야 할 일들이 생길 때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구명조끼를 단단히 조였고 광화문을 지나갈 때는 촛불을 떠올리기도 했다. 한 사람은 시대의 역사와 관련 있다는 말,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스티븐스도 마찬가지였다. 일개 집사였지만 그의 인생도 1차 세계대전 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시대적 배경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역사 소용돌이 속에서 그의 하루하루는 당시에는 평범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주인의 안위에 신경쓰고 중요한 파티 날짜가 잡히면 방문자 명단을 확인하는 일은 그에게 일상이었을 테다. 그러나 인생 말미에 돌이켜 보면 그런 평범한 일상도 모두 그 당시의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점을 그가 좀 빨리 깨달았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숲을 보지 못한 자의 노력이 자기 기만과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줄거리를 읽으면서 숲을 봐야 하는 중요성은 충분히 느꼈다. 다만 어떻게 숲을 봐야 하는지 그 방법은 여전히 물음표였다. 


하루가 바쁘게 지나가는 나날들 속에서 숲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잘 버텼다로 안도하는 생활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긴 세월 그분을 모셔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By. 북치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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