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받아들일 밖에

by YeonJeong

인류가 형이상경를 만난 이래로 사랑만큼 많이 쓴 말이 있을까 싶다. 전연 만만하지 않은 말이 이만큼 만만하게 쓰이는 경우도 없겠다. 흔하게는 남녀간의 주고받는 마음을 사랑이라 일컫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에는 광범위하다 못해 실체조차 분명하지 않아 보이는 사랑을 에로스며, 필로스며, 아가페며 종류를 나누어보기도 했다. 아니 굳이 하나였던걸 나누었다기보다 다른 것으로 인식했을지도 모르겠다.


도무지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이 사랑을 고민한 시간은 어느 사이 십수년전에서 수십년전으로 자순마저 뒤틀었다. 실제로 고등학교 즈음을 지나갈 때 쯤 쓴 글에 "잘 모르겠다."라고 고백아닌 고백을 해놨으니, 남들만큼 나도 알고 싶었다는 것은 굳이 부정할 필요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랜 고민을 지나 이제 내가 찾은 해답의 편린을 다시 한번 적어본다.


혹시 사랑을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대상의 아름다운 모습, 예쁜 모습을 추종하는 것은 아닌가 먼저 돌이켜보자. 내가 막 어머니의 품을 지날 무렵, 1세대 아이돌이 데뷔했다. 아이돌 산업이 첫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거침입, 스토킹을 저지르는 이른바 '사생팬'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어린 친구들이 시종 사랑을 외쳤다. 과연 사랑일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그 대상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묘사하기에 사랑은 너무나 거창한 이름이다. 예쁜 사람, 잘생긴 사람, 매력적인 사람, 끼가 넘치고, 자신감이 있고, 온갖 좋은 형용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이는 사랑의 이름을 갈취한 욕망이다.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랑이 아닐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그 본질을 관통한다. 비로소 모든 인간사 추악으로 우리의 시선이 향한다.


사랑은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 완벽에 가깝다고 하지만, 그저 인간사에서 찾은 유의미한 사랑의 경향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바라는 어머니는 똑똑한 아이를 욕망할 뿐이다. 아이의 장래를 걱정해서든 어머니 자신의 과시욕이든 어떠한 이유를 붙이든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떠한 걱정도, 욕망도, 기대도, 이상도, 열망도, 그 어떤 가치도 수반하지 않는다. 1등을 해서, 건강해서, 말을 잘 들어서, 편식을 하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아이가 좋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욕망의 충족일 뿐이다. 사랑은 서사가 없다.


사랑은 목적이 없다. 지향도 없다. 누군가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충만한 아상일 뿐이다. 너를 위해서 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무엇도 남기지 않는 사랑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백이 되고 충만하게 하기 위한 공간이 될 뿐이다. 사랑 자체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아무 해가 없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사랑의 뒤에는 잔향 만이 남는다. 사랑의 뒤에는 그 누구의 고통도, 아쉬움도, 의구심도, 자랑도, 공명심도, 만족함도, 뿌듯함도, 편안함도, 그 어떠한 감정도 남지 않는다. 사랑은 깔끔하다. 사랑은 은은한 잔향만 남겨 사회를 진동할 뿐이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잔향, 그 잔향이 세상을 바꾼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이명(異名)으로도 알려져 있는 잔향은 세상을 부유한다.


사랑은 다만 받아들임이다. 수용이다. 이 근본에서 멀어질 때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이 근본으로 돌아갈 때 모든 문제가 흩어진다. 사랑은 원수와 같은 사랑하기 힘든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유나 조건 없이 그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특별한 목적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받아들이고 나면 아무 해가 없다. 공자의 인(仁), 석가의 자비, 예수의 사랑이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 서로 사랑하라, 어짊을 실천하고, 자비를 베풀라는 이 근본 사이에서 나는 그 동안 얼마나 방황하였던가. 같은 가르침에도 그 본질을 알지 못하고 사랑이라는 하찮은 문자에 사로잡혀 정작 사랑하지 못한 것이 생업으로 남았다. (결국 이 모든 論을 사랑이라는 거창함으로 시작한 것은 필자의 모태신앙에 대한 마지막 존중, 그 외에는 남은 것이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 사랑을 착각했나.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 그 와중에도 사랑을 일관되게 부르는 경우가 둘 있다. 남녀간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이 그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심리학자의 강연을 들은 바가 있다. 사랑하는 남녀의 처음을 보면 인지장애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인문의 종착을 한낱 정신병으로 치부하는 발언인가 싶지만, 처음 사랑에 빠진 남녀는 상대방의 단점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좋게만 본다. 하지만 이런 리머런스(Limerence)는 찰나같은 인간의 삶에서도 찰나에 불과하다. 우리가 만난 Summer는 시종이 500일이었다. 가장 많은 원수의 관계가 부부관계라고 하니 남녀의 사랑은 한낱 불장난인가 싶다.


어머니의 사랑은 어떤 힌트를 주는가. 귀여운 아이를 보고 귀엽다고 느끼는 것은 굳이 아이의 어미가 아니라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사랑하는 것은 무용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가 울고, 투정부리고, 2시간마다 깨서 집안을 흔들어 놓을 때 발휘된다. 가장 안 좋은 모습, 때로는 더럽고, 미운 모습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또한 욕심과 사랑의 구분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위대하다고 하고 남녀간의 사랑을 마치 영원한 사랑의 대명사처럼 쓰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의 삶이 사랑없이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랑이 뭔지 모르는 우리가 그나마 사랑과 비슷한 모습을 일관되게 마주하는 얼마없는 기회이기에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게 아닐까. 사랑이 받아들임이라는 본질을 알지 못하고 잠시 보이는 그런 모습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잘못 붙여 부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많은 착각이 일어난다. 사랑이라 하면 남녀간 성애로 조건형성되어 낯붉히는 주객전도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사랑을 상실한 시대. 그래서 수천년간 사랑을 부르짖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목적과 방향없이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한다. 그저 받아들일 뿐, 아무것도 남는 바 없이 살고 있다.



2024년 8월 9일,

남방에서 인생 첫 화두의 답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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