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의 우기다.
우리나라도 매년 장마철이면 수해다 물난리다 하며 조용히 지나가는 법이 없지만, 아무래도 열대의 스콜은 소나기하고는 사뭇 다르다. 하루에 두번 퍽이나 규칙적으로 비가 온다. 도저히 맞을 만한 비가 아니다. 가끔은 굳이 비를 찾아 맞는 고상함도 즐기지만 이 비는 아무래도 피해야 겠다.
온갖 물건들이 저마다의 박수를 친다. 마침 하중의 카페에 있었기에 땅을 울리는 빗방울 소리가 온갖 형으로 다가온다. 굳이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 교향곡을 만들어야 되나 싶다. 물이 플라스틱 뚜껑을 두드리는 소리,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그리고 물이 물을 때리는 소리.
사실 우기는 여행이 어렵다고 하지만, 매번 열대의 국가를 찾을 때마다 우기만 골라오나 싶다.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닌 한갓 나 박사를 위한 여행이니 어쩔 수 없기로 하자. 이 정도의 큰 비는 행려의, 특히 두 다리에 크게 의지하는 나의 운신을 막아버리니 그냥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주어진 환경을 그저 바라보기로 했다지만 사뭇 아쉽다.
그래도 마냥 결정없이 돌아다니다 결국 무리하고 마는 나에게 이쯤해서 쉬어가라고 결정해주니 이내 고맙다. 비가 들이치면 들어오라고 권하는 사이공 강의 선장을 만나게 해준 비라서 더 고맙다. 연기(緣起)는 이렇게 나를 품는다. 베트남의 커피를 만나게 해준 것도 이 비다. 쉽게 들어간 카페라 흔히 마시는 아메리카노 정도 생각한 나에게 진한 베트남식 커피를 맛보게 해준다.
시끄러운 실내가 싫어 차양 아래서 비를 구경하러 나올 때는 습기로 혼자 나가는 다소 이상한 형상이었는데, 그 운치로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변이 시끄러워진다. 마침 스콜 교향곡이 끝나가나보다. 슬슬 움직이여야겠다.
2024. AMES 마지막 날,
베트남 사이공 강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