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얻다.

by YeonJeong

여유라는 말만큼 넓게 쓰이는 말이 드물기도 하다. 실제 사전을 봐도 시간적으로 남아도 여유, 공간적으로 남아도 여유, 물질적으로 남아도 여유라고 하니 용례가 퍽 광범위할 만도 하다. 남는다고 다 좋은 것이겠냐마는 여유는 잉여와는 다르게 남아도 참 좋게 남는다. 똑같은 부유함을 일컫더라도 잉여 생산물은 원초적 평등을 원시적 계급의 발생으로 연결되지만, 금전적 여유는 물질적 자유로움을 연상시키니 말이다.


살면서 참 많은 문제를 맞닥뜨린다. 2022년 겨울이 접어들 무렵, 운전대를 잡고 나서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냈다. 정신적으로 한 눈이 팔린 사이에 후방 추돌한 사고라 보험처리를 하고 돌아오니, 이렇게 정신적으로 몰려 있는 시기에 안 좋은 일이 겹치는지 방향을 잃은 원망이 방 안 가득 메우고 있었다. 힘든 일을 겪을 때면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사건으로부터 한숨을 돌릴 때쯤 여유에 대해 생각하였다.


여유는 세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전적 여유가 가장 유연하다. 자본주의 사회라 이름 붙일 만하다. 한 천만 원 정도 쉽게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벼운 접촉사고가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일은 아닐 게다. 때로는 시간적 여유도 좋다. 시간은 쉽게 돈으로 환산되기도 하거니와 남는 시간에 등산이라도 하면 기분 전환이라도 될 테니 시간적 여유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되겠다. 나는 다만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처음에는 생각했던 듯하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금전적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던 내가 다른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였다. 수십 번 배운 것처럼 생각은 마음의 선행(先行)이니, 마음의 여유는 생각의 여유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 너무나 단순명료하였다. 금전적 여유는 돈을 써서, 시간의 여유는 시간을 써서 문제를 해결할진대, 마음의 여유는 마음을 쓰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문제를 문제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스승님께서도 크게 공감해주셨던 기억도 선명하다.


문제는 살면서 마주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도 문제가 된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옆자리 승객이 두런두런 대화하는 것도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된다. 마음이 번잡하면 창문 밖의 생활 소음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예의를 시비하게 된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대화한다고, 이웃에 소음으로 피해를 준다고 예의를 빙자로 남을 탓하게 된다. 모든 문제는 내 마음이 만들고 있는데 남을 공격한다.


지난날, 어쩌면 그렇게도 여유가 없었나 싶다. 금전적 여유는 말할 바도 아니거니와, 수많은 문제로 가득 찬 시간은 시간적 여유도 없게 했다. 쫓기듯 살았으니 쫓기듯 시간을 채워 넣었다. 그 모든 여유 없는 삶은 여유 없는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을, 비워야 할 것들로 가득 들어찬 마음이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에 작은 호수 하나를 만들어 두었다. 이 호수는 보는 이에 따라서는 연못일지도 모르겠다, 대양일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에 이따금씩 사람을 초대한다, 마주하는 일을 초대한다. 마주하는 일이 종지만한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초대하는 일이길 바라며 오늘도 살아간다.



2024년 8월 첫날,

1년하고도 6개월을 더 미뤄둔 글을 구름그림자 아래에서 적다.

낙양이 두배로 비추는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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