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糖節
9월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무덥더니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은 열기가 은근하다. 그래도 이제는 살만하다 싶다. 약속이 있어 느지막히 나가도 햇살이 따가울 뿐 숨막히는 공기는 이제 없다. 저녁 운동이 이제는 시원해서 기분 좋다.
늦여름이 주는 감상과 초가을이 주는 감상은 사뭇 다르다. 둘 다 시기 상으로는 8월말, 9월초 분명 수은주의 8부능선을 넘어온 지금을 일컫는 말일테지만, 늦여름은 미처 매듭짓지 못한 여름휴가의 정취, 여전히 그리운 대청마루와 수박, 그리고 아직 죽지 않았다는 철지난 매미의 울음소리라면, 초가을은 뭔가 쨍하니 높은 하늘이며, 열심히 달려온 우리를 안아주는 조용한 달밤이다. 그러다보니 같은 정경이라도 늦여름과 초가을이 렌티큘러 화처럼 순간순간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어제는 영락없는 초가을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쌀랑한 공기가 복도를 흔들고 있다. 냉기가 온몸을 안아주는 이 느낌은 몇 년 전 스쿠바다이빙을 할 때 느낀 적이 있다. 바닷물 안에서도 해류가 바뀌는 것인지 물 속에서 물 속으로 뛰어드는 느낌은 새롭고 신선하다. 마치 그런 느낌으로 복도 밖에서 복도 안으로 뛰어 든다. 복도로 첨벙 뛰어들어 건물 밖으로 나오면 밖은 햇살이 쨍하다. 늦은 오후 약속을 나가려고 1층 밖으로 나가니 높다란 하늘과 쨍한 햇살이 내리꽂혔다. 거칠 것 없이 떨어지는 햇살은 따갑지만 그늘을 피해 들어가면 그렇게 무섭진 않다. 그늘 아래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굳이 실내로 찾아 들어갈 필요는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바람이다.
이렇게 한 번 씩 방심할라치면 늦여름이 다시 찾아온다. 오늘은 쨍한 햇살이 좀 더 강하다. 하필 이럴 때 카드를 어디 놔뒀는지 몰라 이리저리 들썩이며 뛰어다니다 보면 금세 땀이 흐르곤 한다. 몸이 금세 피곤해진다. 유난히 이럴 때 햇살도 강하다. 유독 이럴 때 내가 기다리고 있는 횡단보도에 사람이 많아서 햇살을 피하라고 설치해 둔 파라솔 아래는 만석이다. 나는 파라솔 입장권이 매진돼 햇살을 올곧게 받고 있다보면 유독 이번 신호가 길다 싶다. 그럴리가 없겠지만.
항상 9월이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올해가 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이맘때 같이 있다. 이는 인류의 역사가 뒤틀어버린 시간의 진행도 한 몫 한다. 생물의 시간은 봄에서야 시작하는데 인류사의 시간은 이미 2개월 전에 시작해버렸으니, 이제 겨우 오르막을 다 올라 한숨 돌릴 참 싶으면 올해가 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7월(sept)을 2개월 뒤로 미뤄버리는 업을 지은 까닭일까. 묘하게 뒤틀린 시간의 흐름은 항상 우리에게 2개월치 빚을 지워버린다.
탄수화물이며 과당이며, 당분이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손발이 붓고 웃배가 더북해 좀체 일어나기가 힘들다. 한 잔 술을 함께 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온몸에 염증이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서 첫발자욱을 내딛으면 찌릿 종아리가 시리다. 당분을 많이 섭취하면 이제 온몸이 못받아주는게 느껴진다. 아저씨들이나 걸리던 그런 만성질환들이 이제는 우리 세대도 많이 걸린다더니 건강검진을 가면 슬슬 설명이 길어진다. 설명이 길든 짧든, 친절하든 불친절하든, 진료비가 비싸든 싸든 요지는 똑같다. 친절한 의사는 생글생글 웃으며 식이요법과 운동하라고 하고, 불친절한 의사는 "별거 없어요. 체중관리 하셔야죠 뭐." 심드렁하게 말할 뿐이다. 무위기소불위, 벌써 수천년 전에 맹자가 먼 후손을 위해 준비해 둔 훈계가 이미 있다.
자러 가는 길에는 휴대폰을 1층에 놔두고 책 한 권 달랑 들고 올라간다. 자기 전에 글을 읽는 게 은은한 재미가 있는데 휴대폰이 옆에 있으니 번번히 실패하곤 해서 내린 결단이다. 전자기기가 끊어지면 마음이 불안하고 연락이 오지 않았는데도 휴대폰의 알림이 오는 것 같은 감각을 받는 것이 현대인의 정신병이라고 하는데 나는 완전히 자유롭습니다라고 하기가 생각만큼 개운하지 않다. 그래도 쉽게 휴대폰을 침상 머리 맡에서 멀리할 수 있으니 그래도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고 자평하며 책을 읽는다. 휴대폰을 완전히 버리는 삶을 살고 싶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자기 전에 휴대폰을 토닥토닥 하릴없이 쓸어넘기다 보면 스스로에게 심심히 미안하다. 특별히 필요해서 휴대폰을 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지식이 있지도 않거니와, 어떤 사회 이슈에 달린 댓글은 자기 전 내 정신을 좀먹는다. 그래도 커뮤니티의 글들은 직접 창작을 하든 퍼오든 그래도 나름대로 스토리는 있다. 커뮤니티의 글을 다 보고 나면 이젠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로 넘어간다. 커뮤니티의 글은 허술하고 썰렁하고 근거가 빈약하긴 해도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숏폼이라고 부르는 멀티미디어 매체는 수많은 원작에서 1분 길이로 잘라오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서사를 무시하고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가져온다. 항상 주변 시야에 어슬렁거리는 천연색의 번쩍번쩍하는 광고배너는 덤이다. 근본없는 단당류 가득한 불량식품이다.
법정 스님은 가을을 비독서지절이라 하였지만, 그래도 그렇지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벌써 2년 전에 선물 받은 하루키의 여행수필을 요즘 읽고 있다. 하루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건 해상도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글이 패미콤에서 재생되는 8비트 소리가 들리는 도트화라면, 하루키의 글은 2400HD의 고해상도 그림이다. 그것도 서라운딩이다. 내가 그리스의 친절하지 않은 날씨 속을 거니는 기분이 든다. 하루키의 날 것의 감정도 그대로 이입된다. 희뿌연 머리 속과 좀 체 집중되지 않는 정신을 조르지오와 까를로라는 두 마리의 벌로 표현하다니, 표현력에 감탄할 뿐이다. 분명 조르지오와 까를로는 꿀벌이 아니다. 어릴 때 곤충도감에서 읽은, 아마 쌍살벌일 것 같다. 허리가 유난히 잘록하고, 말벌이긴 말벌인데 그렇게 무섭진 않다. 무시하기에는 크고, 그렇다고 한판 붙자 하고 싸우기에는 내 키보다 딱 1미터 높은데서 빙글빙글 돌다가 한번씩 어깨 근처까지 내려오는, 쓰레빠를 벗어 힘껏 후려치면 땅에 떨어질 것 같은 그런 벌. 하루키는 글을 통해 감정을 순수하게 공개하고, 나는 감정을 글을 쓰며 하나씩 지워나간다.
사람도 당분이 있다. 당분 가득한 사람을 만나면 몸이 붓는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어 인간이라지만 간혹은 거리감이 절실할 때가 있다. 공연히 말을 하고 싶어 말을 쏟아내고 나면 하릴없이 허전한 감상이 따라온다. 개운한 정신이 끈적한 당분으로 뒤덮혀 울긋불긋 진물이 난다. 세상을 날고 있는 마음은 어디로 간데없다. 글을 읽다보니 당신께서도 그렇게 갈급했군요.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멀리 떠나고 싶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을 수 있다, 먼 데 있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어도 가까이서 추근덕대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아 나보다도 한없이 맑은 영혼을 가진 당신도 그렇게 시달렸군요. 관계를 억지로 끊어내다 보니 그게 또 문제를 일으킨다. 관계를 끊는데 집중을 하다보니 오히려 관계가 생긴다. 툭툭 가을 빨래를 한다. 툭툭.
2024. 9. 8.
그 맑은 영혼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