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나의 시선이 너의 변화를 불러왔구나. 부담스럽다.
친구가 되고 나서 우리는 자주 점심을 함께 먹게 됐다. 처음엔 우연이었다. 방송실 앞에서 그 애를 기다리다가 친구들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같이 먹자"고 했다.
"민기야, 같이 밥 먹자."
그렇게 시작된 일이 습관이 됐다. 일주일에 한두 번, 때로는 세 번씩. 나와 친구들, 그리고 민기. 처음엔 민기가 어색해했다. 당연했다. 우리 무리에 남자는 민기뿐이었고, 친구들과도 친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일부러 민기를 대화에 끼워줬다.
"민기 생각은 어때?"
"봐봐, 야, 민기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킥킥"
민기는 점점 익숙해졌고, 친구들도 민기를 편하게 대했다.
'잘됐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로서 잘 지내는 거니까.
어느 날,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지현이가 웃긴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모두 웃으며 밥을 먹었다. 그때 문득 민기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젓가락을 잡는 방식이 이상했다. 정확히 말하면, 젓가락 두 개를 움켜쥐고 다섯 손가락으로 잡고 있었다.
'신기하네.'
나는 무심코 그 모습을 쳐다봤다.
"너... 젓가락 잡는 거."
"응?"
"되게 특이하게 잡네."
민기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어? 왜 저래?'
순간 내가 실수한 건가 싶었다.
"아... 그래?"
민기가 어색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밥은 잘 먹히는데 신기하다. 나 처음 봐, 그렇게 잡는 사람."
친구들도 덩달아 민기의 손을 쳐다봤다.
"진짜네, 되게 독특하게 잡는다."
"그래도 잘만 잡으면 상관없지 뭐."
나는 재빨리 말했다.
"이상한 거 아닌데, 그냥 신기해서."
민기는 웃었지만, 뭔가 불편해 보였다.
'내가 괜한 말 했나?'
점심을 다 먹고 교실로 돌아오면서도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냥 신기해서 한 말이었는데, 민기가 부담스러워한 것 같았다.
'다음부턴 말 조심해야지.'
그날 이후로 나는 일부러 민기의 손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시선이 가버렸다.
습관처럼. 민기는 여전히 그렇게 젓가락을 잡고 있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주쯤 지났을 때였다.
또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민기의 손을 쳐다봤다.
그런데...
"어?"
순간 눈을 의심했다.
"왜?"
민기가 물었다.
"너 지금... 젓가락 다르게 잡았어?"
민기의 손에서 젓가락이 정상적인 위치에 있었다. 두 주 전까지만 해도 움켜쥐듯 잡았던 그 손이, 이제는 누구나 하는 방식으로 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 응."
"언제 고쳤어?"
"그냥... 요즘."
나는 민기의 손을 계속 바라봤다.
'고쳤다고?'
10년, 어쩌면 그 이상 해왔을 습관을 고쳤다고?
"대박. 고치기 힘들다던데."
"좀 연습했어."
"왜 갑자기?"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왜 갑자기 고친 거지? 민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냥... 고쳐야 할 것 같아서."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나 때문인가? 내가 지적한 것 때문에?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냥 우연의 일치겠지.
"잘했다. 그게 더 보기 좋은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했다.
민기는 작게 "고마워"라고 대답했다. 점심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았지만, 계속 아까 그 장면이 떠올랐다. 민기의 젓가락 잡는 방식.
'진짜 고친 거야?'
지현이가 옆에서 물었다.
"너 왜 그래? 표정이 이상한데."
"아니, 그냥..."
"민기 생각해?"
"뭔 소리야."
나는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민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젓가락을 고쳤다는 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게까지 할 줄은...'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도 생각했다. 만약 정말 나 때문에 고친 거라면. 내 한마디 때문에 10년 넘게 해온 습관을 바꾼 거라면.
'너무 부담스러운데.'
동시에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뭐랄까... 미안하면서도, 조금은 묘한 기분. 누군가 나 때문에 자기 자신을 바꿨다는 게.
'이건 좋은 게 아니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민기가 나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친구들도 알고, 나도 알고.
하지만 모르는 척했다. 친구로 지내는 게 편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너무 과한 것 같았다.
습관을 고칠 정도로.
'내가 뭐라고 했어야 했나?'
아니, 애초에 젓가락 잡는 거 말하지 말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며칠 뒤, 또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나는 일부러 민기의 손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시선은 저절로 갔다. 민기는 여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젓가락을 잡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얼마나 연습했을까.'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혼자, 거울 앞에서, 손가락이 아프도록 얼마나 많이 연습했을까.
나 때문에.
'미안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이 미안함이 진짜 미안함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으니까.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했다는 게...'
나쁘지 않았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동시에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위해 자신을 바꾼다는 게.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민기는 친구야. 그냥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하지만 점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친구가 이렇게까지 할까? 친구라면 한마디에 습관을 고칠까?
'아니야.'
나는 숟가락을 들며 생각했다.
'민기는 나를 좋아하니까 그런 거야.'
그리고 나는 그걸 이용하고 있는 거야. 친구인 척하면서. 그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밥맛이 없어졌다.
"너 왜 안 먹어?"
지현이가 물었다.
"아니, 배불러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민기는 여전히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그 손으로, 새롭게 고친 젓가락 잡는 방식으로.
'나 때문에.'
그날 이후로 나는 민기를 대할 때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말 한마디 할 때도, 시선 하나 줄 때도. 내 작은 말이 민기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게 됐으니까. 내 무심한 시선이 민기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알게 됐으니까.
'그렇게까지 할 줄은...'
그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민기는 나를 위해 자신을 바꿨다. 그리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게 맞는 걸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민기의 그 마음이, 그 노력이, 그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게 나를 점점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동시에,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민기는 나를 좋아하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친구인 척하고. 그리고 민기는 나 때문에 자신을 바꾸고.
'이 관계, 괜찮은 걸까?'
답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미 우리는 단순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도, 점점 민기를 단순한 친구로만 볼 수 없게 되고 있다는 것.
그게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