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우리 집은 부할까 가난할까?

나조차 목동은 만만치 않은 곳

by 냉수 한 그릇

난 매일 삶 속에서 소소한 행복거리를 찾아낸다. 어느 날은 쉬어서, 어느 날은 외식해서, 어느 날은 재밌는 TV 프로를 볼 수 있어서, 또 어느 날은 기다리던 택배가 와서 등 뭐 이런 식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 비해 행복지수가 높은 편이다.


이런 나조차 목동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매매가 20억을 웃도는 고층의 화려한 아파트가 즐비한 이곳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돈 없는 ‘목사’라는 이유가 심리적 방어선을 구축해서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게 했지만, 골리앗과도 같은 고가의 건물들을 보면서 서서히 방어선이 무너져내렸다.


아들만큼은 완벽한 심리적 방어선을 구축하게끔 하고 싶었다. 틈나는 대로 내 지론을 설파했다. 우린 가난하지 않다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사고, 가고 싶은데 갈 수 있는 돈이 있으니 이만하면 잘사는 것이라고. 아들이 친구들 앞에서도 키 작은 빌라에 사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아내는 내 생각과 달랐다. 대놓고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가르쳤다. 못마땅했다. 친구들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자존감이 낮아질까 봐 염려했다.


아내는 어릴 때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자랐다. 부모가 서울에서 옥상이 있는 4층 빌딩의 건물주였으니,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때가 좋지 않았을까, 건물을 짓고 IMF가 터졌다. 주인집의 상징인 4층의 큰 집을 전세로 내주고 1층으로 내려왔다. 중학생이었던 아내는 당시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줄만 알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누군가에게서 진상을 듣게 되었다. IMF로 은행 대출이자를 갚느라 어렵다는 것을. 더는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현실과 착각의 괴리로 그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진실을 알았다면 감당했을 거라고 한다. 당당하게 친구에게 그리 잘 사는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잘산다고 생각했는데 못산다는 진실을 알게 되니 오히려 자존감은 더욱 낮아졌다고 했다. 아내는 아들이 현실과 착각의 괴리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 원치 않았나 보다.


목동에 사는 부모 역시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서울에서 교육의 상징으로 꼽는 도시 중 하나인 목동으로 이사한 것을 볼 때, 자녀를 향한 열심과 교육열은 더할지도 모른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한다. 남들보다 학원 하나 덜 보낸 것으로 조바심내고 안달한다. 하지만 아내는 굳이 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가난하니 원한다고 다 가질 순 없다고 가르쳤다. 아들 기죽을까 봐 무리해서 비싼 거를 사준다거나, 원하는 걸 다 갖게 해주지도 않았다. 아들이 진실을 알고 오히려 당당하게 이겨내길 바랐다. 언제까지 부모가 자녀를 챙겨줄 수 없기에 아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그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들이 하교 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친구들과 대화 중 우연히 집 얘기가 나왔나 보다. 누군 여기 아파트고, 누군 저기 아파트고. 아들은 빌라에 산다고 말했단다.


“거짓말하지 마! 여기 아파트 말고 본 적이 없는데.”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친구들에게 아들이 말했다.

“정말이야. 저기 바로 뒤에 있어.”

그리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못 믿겠으면 우리 집에 같이 가볼래?


지금도 난 어떤 가르침이 아들에게 좋은 것인지 모른다. 둘 다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키 큰 아파트에 사는 친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키 작은 빌라에 사는 것을 드러내며 부끄러워하지 않는 걸 보면, 상대적인 부가 무엇인지 깨달았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 집이 부유하지 않다는 진실을 직면했기에, 여유 있는 미소를 날렸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결핍을 채워나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다 해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들아, 진실을 말해 줄게. 우리 집은 가난하다. 하지만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