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

29,000원. 내 자존심과 맞바꾼 돈.

by 냉수 한 그릇

뚝섬한강공원에서 눈썰매장을 개장했다. 질러야 가기에 온 가족이 함께 타는 스키를 첫 도전 하려 했으나, 초등 저학년 아들에겐 위험하겠다고 판단하여 대안으로 생각한 게 눈썰매다. 입장료가 6천 원이니, 둘이서 1만 2천 원이면 방학 맞은 아들과 평일에 놀아주기엔 크게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다.


입장권 구매 후 눈썰매장으로 입장하려는데, ‘재입장불가’란 글이 입구에 붙어있다. 그러려니 했다. 어디든 재입장이 안 되는 건 국룰(국민 규칙이란 신조어) 아니겠는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안에 화장실은 있냐고 물으니 있단다. 재입장이 안 되는데 화장실까지 없으면 안 되지라며 별생각 없이 들어갔다. 오후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늘어난다기에 오픈런을 감행했다. 다행히도, 썰매 타고 내려오는 대로 줄 설 필요 없이 다시 바로 탈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 본전은 찾겠다는 심산으로 죽자사자 탔더니, 슬슬 추워지면서 배까지 고파온다. 원래 계획대로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씩 먹고 다시 타려는데, 젠장, 그놈의 ‘재입장불가’란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눈썰매장 안에 스낵코너가 있다. 들어가 보았다. 컵라면이며 떡볶이며 순대며, 있을 건 다 있다. 근데 제법 비싸다. 컵라면 하나가 3천 원이다. 그래, 재입장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자본주의 상술의 산물이다. 컵라면 두 개면 자그마치 6천 원이다. 순간 고민이 된다. 하지만 먹기로 했다. 추운데 먹는 라면 맛이 끝내주지 않던가. 나와 아들은 유독 라면을 좋아한다. 그러니 6천 원이면 꽁꽁 언 몸을 녹이는 목적으론 제값은 충분히 하리라 생각했다.




아들이 목마르단다. 둘러보니 물 마실 곳이 없다. 다행히 물을 판다. 아니, 그런데 뭔 놈의 500mL 생수 한 병이 2천 원이냐고. 눈치 없는 아들이 물을 사달라고 한다. 이 비싼 돈을 주고 물을 사 마셔야겠나 생각했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안 마실 순 없지 않겠느냔 말이다. 2천 원을 내고 생수까지 사니, 벌써 2만 원을 썼다. 비싼 값을 치르며 스낵코너를 나오려는데, 입구에서 달고나를 판다. 저게 뭐라고 3천 원이다. 얼마 전 삼청동에서 할머니 한 분이 천 원에 파는 달고나를 첫 득템한 아들은 그 모양대로 자르지 못한 게 한이 되었던지 눈썰매장 입구에서 파는 달고나에 눈독 들인다. 순간 사줄지 말지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고민하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


기분 좋게 사주기로 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평소 같으면 뭐하러 저런 걸 돈 주고 사 먹냐고 거절했겠지만, 자존심이 발동했나 보다. 고작 3천 원에 내 자존심을 팔 수는 없었다. 저 3천 원짜리 달고나도 돈 아깝다고 사주지 못하는 아빠가 되고 싶진 않았을 뿐이다. 스낵코너를 나오니 유로번지라는 놀이기구가 있다. 6천 원이다.


“이을아, 저거 타볼래?”

이 아빠가 난데없이 왜 이러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타고 싶으면 타.”

신나듯 달려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당당하게 지갑에서 6천 원을 꺼내 표를 구매한다.


29,000원. 내 자존심을 지키려고 맞바꾼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