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은 이제 그만!

무분별한 칭찬은 자녀를 망친다

by 냉수 한 그릇

아들과 함께한 수많은 놀이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라면 보드게임일 것이다. ‘할리갈리’가 시작이었다. 이후 블루마블, 모노폴리, 다빈치코드, 스플렌더, 쿼리도, 러시아워, 그래비티 등 대략 20여 종 이상은 했을 것이다. 보드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렇게나 했다니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다.


이중 가장 오랜 시간을 놀았던 보드게임은 블루마블과 모노폴리다. 게임을 하며 아들은 각 나라의 수도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땅을 사고 건물을 지으면서 부동산 개념을 알게 되었고, 은행에서 돈을 빌린 뒤 이자를 내고 상대편 땅의 이용료와 임대료 등을 내는 과정에서 경제 관념도 생겨났다. 내가 아들에게 줘야 할 임대료는 암산으로 신속히 계산하기도 했다. 모든 게 완벽했다. 문제는 다른 데서 생겼다.


아들은 지는 것을 몹시 힘들어했다. 이것이 승부욕 때문인지, 또래 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인지 난 모른다. 내가 이길 때마다 아들은 화를 내거나 울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반대로 본인이 이겼을 땐 흥분하며 기뻐했다. 여느 어른과 다름없이 난 아들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져주는 쪽을 택했다. 앞으로 살면서 겪어야 할 실패가 한가득한데, 이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이 벌써 패배의 쓴맛을 경험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난 좋은 아빠라고 생각했다. 아들을 이길 충분한 능력과 실력을 갖추었지만,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처럼, 그렇게 나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 패배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조금이라도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하네.”, “똑똑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칭찬을 들은 아들은 ‘정말’ 자기가 잘하고 똑똑한 줄 알았다. 이런 걸 착각이라고 하던가.




무분별한 칭찬은 자녀를 망친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할진 몰라도, 자신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하게 하진 못한다. 기준 없이 내뱉는 칭찬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한다.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실패를 견디지 못한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난 잘나고 똑똑한데 세상은 불공정하거나 누군가 자기를 음해하여 패배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마약과도 같은 칭찬에 중독되어 성공 시 주어지는 칭찬으로 갈급함을 채우려고 한다. 칭찬받으려고 성공만을 바라보게 되고, 이는 점점 완벽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질한다. 실패 시 받지 못할 칭찬 때문에 분노나 우울함이 금단 증세로 나타난다.


아들이 지는 것을 힘들어한 이유는 승리를 향한 욕구 때문이거나 또래 아이들만의 특징 때문도 아니었다. 그건 내 실수였다. 무분별한 칭찬이 아들 자신을 스스로 과대평가하게 했다. 아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일진 몰라도 좋은 아빠는 아니었단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론 자녀를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 올바르게, 정직하게 평가하도록 해야 했다.




이후 난 아들과 하는 모든 놀이에서 힘써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때론 계속되는 패배로 눈가에 눈물이 맺힌 아들을 보며 마음 약해 져주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일부러 지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저 정직하게 게임에 임했을 뿐이다. 아들이 실패의 고배를 들고 화를 낼 때마다 난 인생에서 언제든 실패할 수 있고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들이 교훈으로 삼게 했다. 더불어 아들에게, “네가 또래보다 잘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아빠만큼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정직하게 얘기해 주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성경 말씀도 함께 언급하면서(고전 10:12).


시간이 지나면서 질 때마다 보였던 아들의 분노와 우울 감정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실력은 내 수준만큼 상승했다. 블루마블이나 모노폴리뿐 아니라 스플렌더, 다빈치코드, 쿼리도 등의 게임에서도 난 바싹 긴장하고 최선을 다해야 이길 수 있었다. 아들은 자신을 올바르게 보기 시작했다. 스스로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자기 자신을 보았다. 나 역시 나 자신을 정직하게 보아야겠다. 아들을 이기려면 말이다.


그나저나 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5년을 함께 보드게임 했으니, 이제 제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