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만 한 스승은 없지

근데 난 왜 아쉬울까

by 냉수 한 그릇

아들은 유독 또래와 비교하여 겁이 많은 편이었다. 혼자서 잘 돌아다니는 아들과 같은 반 친구들을 볼 때면 아들에게 문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염려하기도 했다. 잠깐이라도 집에 혼자 있지 못하는 건 물론이요, 같이 길을 걸어갈 때도 혼자 앞서가지 못했다. 부모가 있는지 돌아봐야 이내 안심했다. 어디 가지 않고 널 똑바로 지켜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앞서 가보라고 해도 1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돌아보았다. 초등학교 입학 후,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귀기 전 잦은 이사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인지도 모른다. 아들에게 부모를 떠난 세상은, 잡은 손을 놓치면 떠밀려가는 두려움과 공포의 파도 그 자체였을 것이다.


성산동에 살 때,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코로나’로 한창 뉴스에서 떠들썩할 때였다. 친구를 사귈 틈도 없이, 한 한기도 마저 끝내지 못하고 목동으로 이사했다. 다행히 목동의 초등학교에서 몇몇 친구를 사귀긴 했지만, 2학년을 채 마치지 못한 채 2학기 중간에 다시 전학해야 했다. 1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아들은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떠나는 아들을 위해 반 친구들은 수첩으로 된 롤링 페이퍼를 만들어 주었고, 한 친구는 눈물 흘리며 선물을 주기도 했다. 이미 동네에서 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며 관계 맺었던 친구들이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에 전학 온 친구가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터나, 아들은 그 속에서도 특유의 활발함과 배려심으로 친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성동구로 이사하면서 아들은 다시 낯선 환경으로 들어가야 했다. 전학하고 등교 첫날, 난 불안과 염려의 마음을 품은 채 교문에서 아들과 헤어졌다. 노심초사하며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고, 돌아온 아들은 생각보다 괜찮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 날 교문에서 만난 담임선생님은 훌륭한 학생을 보내주었다며 감사의 말을 내게 전해주었다. 학부모 기분 좋아지라며 그냥 던진 말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나도 선생님의 말씀을 믿었다. 내가 보기에도 아들은 훌륭하니 말이다.


어느 새 3학년이 된 아들은, 학급회장에 출마하여 당당히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참 놀랍다. 3년을 끈끈한 우정으로 뭉친 아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아들은 그 속에 들어갔고, 친구들의 마음을 얻었고, 회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난 어릴 때 부끄러움이 많았다. 수업 중 손들고 선생님께 질문을 던지는 친구를 볼 때면 그 용기가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들은 내가 부러워했던 친구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 궁금한 건 자연스레 질문을 던질 뿐 아니라, 더하여 선생님에게 친근히 다가가서 말을 건다거나 먹을 걸 주는 다정함까지 갖추었다. 내가 어렸을 땐 상상도 하지 못했던 행동을 아들은 서슴없이 하고 있다.




경험은 두려움을 물리친다. 아들이 날 닮았더라면 길거리에서 친구를 보고 부끄러워 숨었을지도 모르지만, 감사하게 엄마 성격을 꽤 많이 닮았다. 아내는 나와 달리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누구든 불편해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과도 언제 처음 만났냐는 듯 대화를 잘 이끌어 간다. 아내는, 내가 볼 때 장모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장모님은 내가 본 호탕하고 배포가 두둑한 사람 중 한 분이다. 처가에 갈 때면 손님이 계신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가서 이것저것 얻어오기도 하고, 반대로 뭔가 생기면 늘 나눠주기에 바쁘시다. 또한,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공장을 운영하기에 점심때면 공장 직원들이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잦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처가에 오면 늘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명의 이모들과 시간을 보냈다. 때론 장모님 지인들과 공장 직원들과 이웃집 사람들과 함께했다. 아내 친구들과도 종종 만났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을 자주 만나본 아들은 사람에 대해 낯섦과 두려움이 현저히 적은 편이다. 사람을 향한 사랑이 많고 배려심이 깊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5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편의점이나 가게 등에도 혼자서 심부름 다녀오기도 한다. 내가 볼일 있을 때면 오히려 집에 있겠다고 한다. 부모와 떨어지는 게 무서워 가기 싫은 곳도 따라다녔던 아들은, 이제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기고 있다. 좋은 일이다.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그런데,

왠지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