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사다

먹어보니 안 먹어도 되는 줄 알다

by 냉수 한 그릇

어릴 적 경험의 소중함은 말로 이루 다 설명하기 어렵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봐야 내 입맛에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고, 새로운 놀이를 해봐야 내가 잘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맛없을 거란, 재미없을 거란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기도, 성장하기도 어렵다. 경험해보지 않고 안 될 거라 생각하는 부모의 편견은 자녀에게 투영되어, 그가 어른이 되어서도 뭔가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른인 내 기준에서 쓸데없어 보이는 것을 시도하려는 아들에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그것이 비용을 들여야 하는 거라면, 아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맛없는 거라며, 쓸데없는 거라며, 낭비하는 거라며 제지했다. 없는 형편에 돈 들이면서까지 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살아가면서 내가 원한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가르쳐 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지 말아야 했나 보다. 내가 솜사탕을 먹어보았더니, 달고나로 부르는 ‘쪽자’를 먹어보았더니,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먹어보았더니 유익이 없어서 아들이 먹는 걸 막았지만, 사실 난 먹어보았기에 맛을 알았던 게 아닌가. 때론 누군가의 선(先) 경험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지만, 생명이 달린 문제가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교훈을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들이 어릴 적 다양한 걸 경험하여 커서도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부부가 같아서 좋은 점도 많으나, 달라서 좋은 점 역시 많다. 아내와 난 먹는 음식 종류부터 선호하는 놀이 유형도 다르고, 성향마저 다르다. 난 육류와 자극적인 음식류를 좋아한다. 부대찌개와 라면, 삼겹살 등은 내가 애착하는 음식이다. 반면 아내는 이런 유의 음식이라면 질색한다. 대신 샐러드나 초밥 등 덜 자극적인 유의 음식을 선호한다. 난 아내를 만나며 파스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전엔 파스타처럼 맛없는 음식을 사람들이 왜 먹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먹어보니 신세계다. 지금은 내가 먼저 파스타 먹으러 가자고 한다. 크림소스와 오일소스 모두 좋아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 떡볶이도 마찬가지다. 아내를 만나며 난 즉석떡볶이란 걸 먹어보았다. 특히 라면 사리를 넣은 떡볶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초밥은 특히 놀랍다. 사실 난 어릴 때부터 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먼저 아내에게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메뉴가 되었다.


난 집에서 정적인 활동하는 걸 좋아한다. 아내는 밖에서 동적인 활동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난 주중 집에서 아들과 보드게임을 하거나 아들의 학습을 지도한다면, 아내는 내가 없는 주일마다 아들과 이곳저곳 밖을 돌아다닌다. 가족 모두 있는 토요일은 무조건 밖을 나간다. 내 기억에 토요일에 집에 있었던 적은 아내가 아프거나 수업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내가 집에 있으면서 주식투자를 공부하니,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아들은 자연스레 주식 차트 보는 법과 기업의 재무 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종종 칠판에다 강의랍시고 주식 차트를 그리며 설명하는 걸 들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내가 장기를 공부하니 아들도 배웠고, 내가 큐브 6면을 맞추니 아들도 따라 맞추기 시작했다. 반대로 아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니, 나도 유튜브 영상으로 타는 법을 배우며 따라 타게 되었다. 아내 몰래 아들과 먹는 라면 맛은 끝내준다. 유행하는 불닭면을 먹으며 맵다고 물 마시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래 이런 것도 먹어봐야 알지.’라는 생각을 한다. 내 덕에 아들은 순대도 좋아하게 되었다.




아내 때문에 아들은 바깥세상의 다양한 먹거리와 장소를 경험한다. 다양한 도넛, 파스타, 초밥, 우동 종류도 먹어본다. 난 좋아하지 않는 마라탕이나 일본식 면 종류도 아들은 좋아한다. 내게 어디 있는 무슨 도넛과 마라탕이 맛있다며 말하기도 한다. 서울에 있는 궁이란 궁, 릉이란 릉은 다 가보았다. 아내 덕에 아들은 다양한 장소와 먹거리를 경험한 셈이다. 결국, 아들은 나와 아내가 좋아하는 걸 모두 좋아하고, 먹을 줄 알고, 할 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그중에서 무엇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고, 흥미롭고, 무서운 줄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내 경험상 좋은 게 아니어도, 한두 번쯤은 아들이 경험하도록 하게 한다. 내가 어렸을 땐 해보지 않았을 법한, 아니 해보지 못했을 법한 것들도 아들에겐 경험시켜 주려고 한다. 가족이 수원으로 여행 갔을 때, 화성행궁 연무대에서 국궁(활쏘기) 체험을 하게 하고, 근처 가게에서 연을 사서 함께 날려보기도 했다. 이미 해본 나로선 굳이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나, 경험해보지 못한 아들에겐 경험을 사줄 필요가 있었다. 케이블카도 타보려 했고, 사진전도 가보려 했고, 출렁다리도 건너보려 했다. 한번 타고 말면 그만인 불꽃놀이도 각자 하나씩 사서 태워보며 웃기도 했다. 그렇다고 돈을 막 쓰는 건 아니다. 필요한 경험을 사주는 것이다. 정말 경험해보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게 아니라면, 아들에게 소소한 경험을 사주고 싶다.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경험이라면 더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