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키우신다고?

사명 위에 은혜가 덧입힌다

by 냉수 한 그릇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12년 만에 16강 진출이란 쾌거를 이뤘다. 그 중심엔 파울루 벤투 감독과 손흥민 선수가 있었다. 난 축구에 관한 한 문외한이다. 월드컵 기간 우리나라 경기라면 새벽이라도 깨서 볼 정도로 좋아하나, K리그까지 찾아볼 정도는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벤투 감독과 손흥민 선수가 중심이라고 말한 건, 그들이 감독과 주장이기 때문이다.


16강 확정 후 궁금한 게 생겼다. 16강에 진출한 건 감독 역량인지 선수 역량인지 말이다. 관련 자료를 찾아봐도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할 만한 답을 찾진 못했다. 사람마다 의견도 달랐거니와 딱히 전문성 있는 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았다. 대한축구협회가 감독 선임에 신중한 건, 그만큼 감독의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를 보유하더라도, 전략과 전술 없이 팀을 운영하면 실패할 것이 뻔하다. 각 선수의 재능을 파악하여 매 경기에 어떤 선수를 출전시킬지 판단해야 한다. 경기 중 적절한 시기에 선수교체로 전술 변화와 함께 팀 분위기를 전환하여 승리를 끌어내야 한다. 선수의 부상이나 경고 등으로 퇴장 시 감독은 순간 판단력으로 위기를 모면해야 하며, 이것으로 팀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11명의 선수를 조직적으로 운영하여 경기에서 이기는 건 오롯이 감독의 몫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것을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낸 거스 히딩크 감독을 통해 이미 보았고 확인했다.


그러나 한편, 16강 진출 업적을 오로지 감독에게만 돌린다면, 필드에서 땀 흘리며 뛰어다닌 선수로선 서운할 만도 하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오직 공만 바라보며 뛰어다녔고, 내가 골을 넣어 영웅이 되려는 마음을 꾹 누른 채 동료 선수에게 패스했고,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며 부상의 위험이란 생각은 접어둔 채 순간 판단으로 뛰어올라 머리에 맞추기도 했다. 무엇보다 포르투갈전에서 1대 1로 비긴 상황에, 후반 45분 손흥민의 도움으로 황희찬이 역전골을 넣은 건, 선수의 역량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자신을 둘러싼 포르투갈 수비수들을 무시한 채 순간 판단으로 멈추어 주변을 살펴보았고 이내 달려오는 황희찬에게 정확히 패스하였다. 황희찬 선수는 포르투갈 골문을 향해 공을 드리블하며 달려가는 손흥민을 보고 숨이 차오르는 고통을 이겨낸 채 앞으로 달려가서 공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신중하게 공을 포르투갈 골문을 향해 세차게 집어넣었다. 이것을 어찌 감독의 역량이라고만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분명 감독의 전술과 함께 선수의 순간 판단과 능력이 어우러진 결과이리라.




난 이것을 내가 쓴 책 ‘냉수 한 그릇’에서, 사명 위에 은혜가 덧입힌다는 말로 설명했다.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은혜를 구하는 건 세상 말로 도둑놈 심보라고 했다. 은혜가 필요한 이유는 사명만으론 되지 않기 때문이란 말도 했다. 그래서 애는 누가 키우냐고? 내가 키운다. 아내가 키운다. 열심히 기저귀 갈아주었고, 이유식 만들어 주었다. 밤잠 설쳐가며 젖을 먹이기도 했다. 책을 읽어주었고, 놀아주었고, 가르쳤다. 때론 화나고, 힘들고, 속상했지만, 내 자식이기에 열심히 키웠다. 그러니 아들이 잘 자란 걸 하나님 공으로만 돌린다면 나로선 매우 속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키우지 않으신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매 순간 아들을 돌보았고 지켜주었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난 지금까지 아들을 지켜주시고 길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 우리 부부만 할 수 있는 고백이고, 현재에 이르러서야 결과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고백이기도 하다. 자녀는 하나님이 기르신다는 말로 둘, 셋은 낳으라며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상대의 형편을 알지 못한 채 애 낳으라는 무책임한 말로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건,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난 열심히 아들을 기를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잘 자란 후, 난 하나님께 아들을 잘 길러주신 것으로 영광 돌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