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원하는 걸 말하기 주저한다면
유독 아들은 자신이 원하는 뭔가를 나와 아내에게 말하기 주저한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 가족이 휴가로 고향에 내려가서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손주 왔다며 아들을 마트로 데리고 가서 좋아하는 장난감을 고르라고 했다. 아들은 수많은 장난감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거 하나를 고르지 못한 채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할 뿐이었다.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다음에 사자.”라고 하면 울려고 하면서 떠나기 싫어했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내 안에선 아들을 향한 답답함과 속상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빨리 안 고르면 집에 간다.”, “금방 고를게!”라는 말만 서로 반복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아들은 여전히 마음에 드는 장난감이 없었던지 뭐 하나 딱 고르질 못했다.
그런데 한 장난감 앞에선 다른 것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이게 마음에 들어?”라고 물으면 이내 “아니”라고 답하며 얼른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이동했다. 할머니가 손주 장난감 사주겠다며 데리고 왔는데 빈손으로 아들을 집에 보내기도 뭣하여 그나마 오랜 시간 쳐다본 장난감을 골라서 계산대로 이동했다. 난 그때 아들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세상을 다 가진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가득했다.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엄마, 아빠가 싫어하리라 생각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어쩌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거절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아들이 뭔가 내게 요구했을 때, 난 쓸데없는 거라며 거절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사려고 할 때도 부정적으로 작용했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때로 비싸서 못 사준다는 아내와 내 말이 아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이 다른 것에 비해서 비싸다고 생각했다면, 비싸서 못 사준다는 아빠, 엄마의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가격이 비싸서 사줄 수 없다고 말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 물건이 그 가격에 합당하다면 사줄 수 있다. 하지만 물건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아이보다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부모로선 거절할 수 있다고 본다. 무엇이든 자녀가 원한다고 모두 갖게 해주는 건 좋은 부모가 아니다. 난 여전히 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때론 승낙할 것이나, 거절하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는가. 내 기도에 Yes만 하시진 않으니 말이다. 내 기억엔 No가 더 많았으니.
그러나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뭔가를 하거나 사려고 할 때 주저한다면, 우리 부부의 양육방식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아니, 주 양육자인 내 문제일지도 모른다. 틈나는 대로 아들에게 얘기했다. 사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무엇이든 말해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예 얻지 못한다고. 아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듯했다. 그리고 원하는 걸 말했을 때, 내가 거절할지언정 그런 요구 자체로 자기를 책망하진 않는다는 걸 깨닫는 듯했다. 이후 조금씩 먹고 싶은 걸 말하기 시작했고, 아내는 그것이 아들에게 크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사주었다. 가끔은 아들이 요구하기 전에 아내가 먼저 장난감을 사주기도 했다.
여전히 아들은 말하는 걸 주저하기도 한다. 말하려다 말고 멈칫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말하도록 요구한다. 황당한 요구라도 들어주겠다고. 뭐라 하지 않겠다고. 들어보고 들어줄 수 있으면 들어주나, 들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말해야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해 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