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승부욕
아들은 유독 나와 아내가 하는 놀이에 관심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형제 없이 자란 아들에게 친구란 부모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나와 아내 둘이서만 하는 대화나 놀이에 자신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으로 힘들어할 만도 하다.
아들은 다섯 살 때 구구단을 모두 외웠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외웠으니 빠르다면 빠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아이에 비해 특출나게 머리가 좋다거나 공부에 열정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이 공부를 좋아하진 않는다. 여느 초등학생처럼 그냥 해야 하니 하는 것뿐이다.
셋이 길을 걷다가 아내와 장난친다며 서로 구구단을 물어본 게 시작이었다. 나와 아내는 상대가 헷갈릴만한 구구단 곱셈식을 묻기 시작했고, 옆에서 재밌다며 지켜보던 아들은 구구단에 관심을 보이면서 자기도 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구구단이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한 뒤, 너는 구구단을 외지 못하니 놀이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말해 주었다. 아빠와 엄마 둘만 하는 놀이에 자기가 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들의 승부욕(승리욕이란 말이 정확하나 널리 쓰이는 말이니 그냥 쓰겠다)을 자극했고, 이에 질세라 아들은 집에서 2단부터 외우기 시작했다. 한 단을 끝날 때마다 외우는 모습을 동영상에 담으며 칭찬해 주었다. 칭찬받은 아들은 나머지 단도 힘을 내어 외우기 시작했고, 며칠 만에 9단까지 모두 외우고야 말았다.
어느 날은 길을 걸으며 재미 삼아 숫자 1에서 100까지 영어로 말한 게 계기가 되어 아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숫자를 영어로 말하는 건 구구단을 외기보다 쉬웠다. 그저 나와 아내가 숫자를 하나씩 말하면,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도 재밌다며 따라 했으니 말이다. 이후 영어로 현재 시간을 말해 주어도 곧잘 알아들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아들에게 승부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승리를 향한 지나친 욕망은 영혼을 지치게 하나, 적절히 이용한다면 학습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자녀가 내 아들 같진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관심 분야도 다를 테니 말이다. 중요한 건, 내 자녀가 가진 성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인 듯하다. 그래야 그것에 맞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들에게 있는 승리를 향한 욕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사실 잘 모른다. 배 속에서부터 있었던 것인지, 부모를 보고 배운 것인지, 아니면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계발한 것인지. 어떤 것은 흥미를 갖고 하나, 또 어떤 것은 좋아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저 아들은 부모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놀이에 소외되지 않으려고,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싫은 것도 참아내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아들이 행복한 쪽으로 선택하길 원한다. 본인이 싫다면 굳이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 사는 게, 어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지 않겠는가. 양치질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난 아들에게 있는 적당한 승부욕이 마음에 든다. 그것이 아들을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이면 제지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면, 오히려 아들에게 있는 승부욕을 격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