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하지 마세요

각자 사정이 있어요~

by 냉수 한 그릇

두 명의 자녀를 꿈꿨다. 아들과 딸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성별이라면, 서로 잘 지낼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누가 말했던가? 하나님의 비전은 이루어지나,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 결국 한 명으로 만족하며 산다.


결혼하면 자동으로 애를 낳는 줄 알았다. 지인의 결혼 소식과 함께 임신 소식을 늘 들어왔으니 이렇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닌 터. 하나 임신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SNS상 지인의 임신 소식은 내 마음을 힘들게 했다. 같은 처지라면, 아니 최소한 내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었더라면 마음껏 축복하겠으나, 난 그러질 못했다. 누구는 쉽게 임신하는 것 같은데 왜 우리 부부에겐 소식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왔다. 언젠가 아내가 임신하면, 굳이 SNS 등에 소식을 알리진 말아야겠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우리 부부와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식을 알리는 이들을 원망한다거나 비난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어디까지나 우리 부부의 다짐일 뿐,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할 마음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좋은 소식을 알리고 서로 기쁨을 나누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다만, ‘질투’라는 죄는 누군가 기쁜 소식을 알리는 순간에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비교의 늪에 빠지면 오랜 시간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저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고, 상대를 마음껏 축복하는 것이 비교라는 죄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해결책일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 2년 반이 지나서야 아내는 임신했다. 다짐대로 마음을 담아 기뻐해 줄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기다린 10개월이 지나고, 아들은 세상을 향해 우렁찬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아이를 낳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의사의 만류가 있었다. 하지만 자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마음먹은 것을 강행했다. 첫 아이 출산 후 예상대로 아내의 건강은 나빠졌다. 더불어 둘째 임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결국, 저린 마음을 부여잡고 둘째는 포기해야 했다. 이렇게 두 자녀를 바랬던 나의 꿈은 하나님을 원망한 채 접어야만 했다.


때로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한 채 잔인해진다. 상대의 사정과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다. 말 못 하는 그들만의 처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내뱉는다. “한 명이라고? 둘은 있어야지.” 그래, 나도 두 명은 갖고 싶었다.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던 둘째 생각을 그처럼 잔인하게 다시 상기시켜 줄 필요는 없다. “기도해, 기도! 그럼 하나님이 둘째도 주셔.” 그래, 그렇게 기도해서 내린 결론이 둘째는 포기하는 거였다.


상대의 사정을 모조리 알 수는 없다. 겉으로 웃는다고 하여, 속까지 웃는 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의 형편을 알지 못한 채 쉽게 말할 때가 많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람들은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을 차마 밝히지 못한 채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간다. 우린 한 명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니, 더는 둘은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마라.


아들아, 넌 그렇게 태어났다. 아빠는 네 동생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련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세요!”